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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엽의고전나들이] 강감찬과 벼락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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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 자연에 무방비로 노출되다 보면 벼락 맞을 일도 많았을 것 같다. “벼락 맞아 죽을 놈”이라는 욕이 있는 걸 보면, 벼락 맞아 죽기까지 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 중에 벼락 맞아 죽었다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실제 없어서라기보다는 벼락 맞는 일을 천벌로 여겼기 때문일 것 같다. 대체 얼마나 잘못했으면 하늘이 벼락을 내렸겠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익히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벼락 맞아 벌을 받는 일과 관련하여 재미난 설화가 하나 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벼락 맞아 벌 주던 일이 아주 흔했단다. 그래서 부모에게 불효해도 벼락 맞고, 형제간에 우애 못해도 벼락 맞고, 밥알 하나만 시궁창에 잘못 버려도 벼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최 아무 일도 마음 편히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때 강감찬 장군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했다. 역사 속의 강감찬이 그랬을 리가 없지만, 적어도 강감찬쯤이 되어야 그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을 터였다. 강감찬은 일부러 샘 가장자리에 앉아 똥을 누었다. 그러자 영락없이 하늘에서 벼락칼이 내려왔고 강감찬은 그 벼락칼을 분질러버렸다. 그 뒤로는 벼락칼이 도막칼이 되어서 그 위세가 전만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를 향유하던 사람들의 심리가 훤히 보인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벌을 받는 게 마땅하지만, 크든 작든 모두 벼락으로 끝장을 보려 하면 아무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법치국가에서라면 법에 정해지지 않은 형벌이나 형량을 임의로 내릴 수 없을 터, 그저 미개하던 시절 이야기로 치부해도 그만이겠다. 그러나 법정 바깥에서는, 오래전 개수대에 밥알 하나 버린 사람까지 색출하여 벼락을 내려야겠다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조그마한 비리 같은 게 실린 신문기사에도 만고역적에게는 멸문의 화가 딱이라는 식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어차피 벼락을 내릴 바에야 모든 잘못에 똑같이 내리겠다면 그나마 덜 혼란스러울 텐데, 우리편은 모르겠고 상대편만큼은 그냥 두지 못하겠다며 망나니 칼춤 추듯 벼락칼을 휘둘러댄다. 만일 이야기 속 강감찬 장군이 이 꼴을 본다면 후회막급 끌탕을 할 것 같다. “쯧쯧. 내 목숨을 걸고 벼락칼을 토막냈건만, 자괴감이 든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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