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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뒤샹·백남준의 ‘적자’ 아이웨이웨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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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미술 거장 첫 한국전시

4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한겨레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대나무 설치작품 <옥의>(2015)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중국 한나라 시대 황제 무덤에서 나온 옥갑으로 된 수의를 대나무로 재현하며 인간 육체와 욕망의 허망함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옥의> 주변에 장식 벽지처럼 붙어 있는 작품은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2015)이다. 감시카메라와 수갑 등 인권을 질곡하는 기물들의 이미지가 마치 아름다운 장식물처럼 치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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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중국 허베이성에 있는 2천년 전 한나라 무덤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유물이 나왔다. 제후왕 유승의 주검을 감싼, 이른바 ‘금루옥의’(金縷玉衣)라 일컬어지는 수의는 2400여개의 옥조각들을 무게 1㎏이 넘는 금실로 이어 붙인 것이었다. 옥 수의를 입으면 주검이 썩지 않는다는 믿음 아래 수백명의 장인이 수년간 오직 이 한벌을 만든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주검은 결국 썩어 없어졌고 빈 옥 수의만 불멸의 유산으로 남았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6·7전시실에 차려진 중국 현대미술 대가 아이웨이웨이(67)의 개인전 ‘아이웨이웨이: 인간 미래’는 대표작 <옥의>를 통해 금루옥의에 얽힌 육체의 유한성과 욕망의 부박함을 이야기한다. 지하 공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금루옥의의 재현품은 옥조각들이 아니라 대나무로 듬성듬성 틈이 나 있는 엉성한 몸체로 나타날 뿐이다. 땅속이 아니라 천장에 올려져 있다는 점에서 작가는 고대인들의 삶과 사유, 믿음이 지금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인간의 실존은 세월 속에서 얼마나 약하고 허망한지를 드러낸다.

아이웨이웨이는 예술가 눈에 의미심장하게 꽂히는 모든 것들이 다 예술이라고 선언한 프랑스 거장 마르셀 뒤샹(1887~1968)과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을 계승한 21세기의 적자로 꼽힌다. 드로잉 하듯 글을 올린 블로그를 비롯해 트위터 등 디지털미디어와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작업 반경, 반체제·인권운동가, 전위 작가를 넘나드는 활동 폭, 강렬한 사회·정치적 메시지 등으로 독보적 경지를 구축해왔다.

전시는 회화와 사진, 영상, 건축, 공공미술, 도자, 출판 등 여러 장르를 망라한 120여점의 출품작을 통해 작가의 최근 생각과 작품 면모를 보여준다. 옥의, 십이지 등 중국의 역사적 전통과 미학이 담긴 옛 유물 등을 매개체로 길어올린 심오하고 기발한 성찰이 돋보인다. 코로나 팬데믹과 중국 정부의 검열을 겪으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난민 인권 등을 역설해온 그의 사유는 미술관 뜨락 앞에 설치된 <나무>란 설치작품에서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지상계와 천상계, 인간과 세상을 연결하는 의미를 담은 당산나무, 신목을 연상시키는 설치물은 중국 남부 지방의 여러 나뭇조각과 뿌리들을 한데 이어 만든 조형물이다. 이 짜깁기된 나무 형체에 모든 질곡과 압제에 저항하는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숨결을 상징적으로 착근시킨다.

한겨레

아이웨이웨이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의 유리 장인들을 시켜 만든 <유리를 이용한 원근법 연구>(2018). 그는 세계의 기념비적인 건물들을 배경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내세운 욕설의 상징 이미지를 찍은 사진 연작으로 유명해졌는데, 이 연작을 여러 색깔을 입힌 입체 유리 조형물로 유머러스하게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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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예술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정치다. 그리고 예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그의 금언에서 보이듯, 출품작들은 정치·사회적 발언으로써 소통하고 교감하는 예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와 <조명>(2009)이 이를 대표한다. 베이징 천안문(톈안먼) 광장, 파리 콩코르드 광장 등 세계 각지의 기념비적 공간을 찾아가 가운뎃손가락을 곧추세우고 욕하는 모습이 담긴 이 연작들은 삶의 필연적 조건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좇는 작가의 삶을 암시한다. 이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의 유리 장인들을 시켜 만든 근작 <유리를 이용한 원근법 연구>(2018)로 새롭게 변주된다. 사진 연작을 여러 색깔을 입힌 입체 유리 조형물로 유머러스하게 재현했다. 2009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시민조사단을 꾸린 작가가 갑자기 경찰에 연행당하기 직전 상황을 퍼포먼스나 뮤직비디오 현장처럼 찍은 <조명>(2009)이 남기는 생경한 잔상들도 기억할 만하다.

작품들은 개별적으로 빛나지만, 두루 꿰어 배치하고 생성되는 의미를 찾는 큐레이터의 존재감은 찾아볼 수 없다. 지상의 원근법 연구 연작, 색칠한 한나라 토기들, 지하의 대작 옥의와 레고로 만든 십이지 군상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알려진 면모나 목소리를 낼 뿐이다. 총체적으로 지금 현재 작가의 조형의식이나 작업세계에서 어떤 면을 추출하거나 흐름을 구성해 이야기하려는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세개의 큰 공간에 최근 10여년 사이 주요 평면·입체 작품들을 우겨넣은 듯한 전시 얼개와 큐레이팅은 낙제점에 가까운 수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미술관 안팎의 증언들을 들어보면,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권 거장의 기획전을 꾸려보자는 학예실 차원의 기획으로 1년여전 시작됐으나 준비가 부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와 직접 담판했어야 할 출품작 사전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미술관이 출품작을 확정한 뒤 작가가 “꼭 들어가야 할 작품이 빠졌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빠진 작품을 부랴부랴 충원하는 비용으로 작품 운송비 가운데 반출비용 4억여원을 돌려 쓰면서 전시 예산이 구멍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술관 쪽은 지난 연말 담당 학예사에게 사태 경위에 대한 시말서를 내라고 했으나 그는 상부의 일방적 지시와 불통으로 빚어진 사태라고 맞서며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국가권력의 비루한 속성을 까발리고 통제에 대한 저항으로 일관해온 아이웨이웨이의 첫 한국 미술관 전시는 뜻밖에도 한국 문화권력 기관의 블랙코미디 같은 내홍을 드러내는 퍼포먼스적 상황을 빚어냈다. 작가가 직접 기획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어떤 소재와 전시든, 지금 현실에 맞춤한 그 ‘무엇’을 끊임없이 생성해내는 작가, 역시 아이웨이웨이다. 전시는 4월17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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