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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90도 낙마 장면 찍기 위해···KBS '태종 이방원' 말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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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말 넘어지는 장면서 학대 의심”
동물자유연대, 현장 영상 공개
동물안전 가이드라인 필요 지적


경향신문

동물자유연대가 공개한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동물 학대로 의심되는 장면이 방영되면서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해당 드라마 연재를 중지해달라”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 말은 사고 약 일주일 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송 촬영 현장에서의 동물 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권 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등은 지난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태종 이방원’에서 동물 학대로 의심되는 장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장면은 지난 1일 방영된 것으로, 이성계 역할을 맡은 배우가 낙마하는 장면을 담았다. 드라마에 나온 말은 몸이 바닥에서 90도 정도로 솟으며 머리부터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장면을 면밀히 살펴보면 말의 다리를 와이어로 묶어서 잡아당겼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런 지적에 부합하는 현장 영상을 20일 공개했다. 동물자유연대가 공개한 영상에는 나무를 기둥으로 한 줄이 말에 묶여 있고, 다수의 사람들이 긴 줄을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말이 달리다 줄에 걸려 머리부터 고꾸라지고, 약 6초간 일어나지 못하고 영상은 끝난다. 동물자유연대는 “강제로 넘어뜨리는 과정에서 말은 몸에 큰 무리가 갈 정도로 심하게 고꾸라지며, 배우 역시 부상이 의심될 만큼 위험한 방식으로 촬영됐다”고 비판했다. 이 말은 촬영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드라마 ‘태종 이방원’ 연재를 중지하고 처벌해달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청원인은 “고꾸라져 땅에 처박힌 말은 한참 동안 홀로 쓰러져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고, 그 말의 상태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단 1초 컷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드라마 연재를 중지하고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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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드라마 ‘태종 이방원’ 연재를 중지하고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20일 오후 6시 기준 5600여 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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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현장에서 동물은 여전히 ‘소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가 2020년 공개한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이 담은 157명의 촬영 현장 관계자 설문 내용을 보면,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스트레스가 높다는 응답은 59%에 달했다. 촬영 시 사고로 동물이 죽거나 다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3%, 고의로 동물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것을 보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8%나 됐다. 말을 멈추게 하기 위해 전기 충격기를 사용하고, 새가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이다.

이런 행위는 동물보호법상 ‘학대’에 해당한다. 동물보호법은 ‘도박ㆍ광고ㆍ오락ㆍ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학대로 규정하고, 위반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KBS 측에 말의 생사 여부와, 살아있다면 안전은 어떤지 확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더해 향후 촬영 과정에서 동물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를 마련하라며 면담을 요청했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말이 상해를 입거나 죽은 것으로 확인될 경우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권행동 카라가 제시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말과 축산 동물이 촬영에 필요할 때 ‘말의 걸음걸이에 이상을 주는 장치나 약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역사극 등 많은 수의 말이 필요할 때는 반드시 말과 관련된 촬영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는 “동물은 말을 못하고 아무도 권리를 대변해주지 않는 것을 악용해 자극적인 장면, 시청률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며 “가이드라인이 제작돼 모든 현장에서 최소 기준으로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BS는 20일 입장을 내고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최근 다시 말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니 촬영 일주일 쯤 뒤 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겠다”며 “각종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을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조언과 협조를 통해 찾겠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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