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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살인’ 김병찬은 당당했고, 피해자 가족은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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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는 위협용” 계획 범죄 부인

변호인, 정신감정·양형조사 신청


한겨레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병찬씨가 지난해 11월2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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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이별을 통보한 게 이별 시점이죠. 계획 범행이 아니라고 하는데, 누가 대화할 때 흉기를 들고 가요.”

전 연인의 스토킹에 시달리다 살해당한 ㄱ씨의 동생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법정에서 눈물을 쏟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만 닦는 피해자 가족과 달리, 피고인석에 앉은 김병찬(36)씨는 고개를 들고 눈을 감은 채 피해자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김씨는 전 연인 ㄱ씨를 스토킹하다 그가 자신을 신고한 것에 앙심을 품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법정에서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고 우발적 범행이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김씨의 변호인은 김씨의 불우한 가정환경 등을 들며 김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김래니) 심리로 20일 열린 김씨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살인) 등 혐의 재판에서 김씨는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이었다. 풀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온 김씨는 재판 내내 고개를 들고 재판부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했다. 답변하기 전 옆에 앉은 변호인과 상의하기도 했다. 김씨는 “흉기를 산 것은 (피해자) 위협용이었다. (피해자의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에서 나오는 소리에 흥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계획 범행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19일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피해자 ㄱ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ㄱ씨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김씨는 이후 피해자의 집에 지속해서 찾아가는 스토킹 행각을 벌였다. 피해자를 협박하고 폭행하기도 했다. 그해 11월7일 재차 ㄱ씨의 집을 찾아간 김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폭행 등으로 퇴거 조치를 당했고, 법원으로부터 ㄱ씨에 대한 접근금지 잠정조치를 통보받았다. 이에 김씨가 ㄱ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김씨는 범행 전날인 11월18일 모자와 흉기를 사서 다음날 오전 ㄱ씨의 오피스텔 비상계단에 숨어 ㄱ씨가 나오길 기다렸다. 김씨는 집 밖으로 나온 ㄱ씨에게 흉기를 들이밀며 경찰에 신고한 것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지만, ㄱ씨가 이에 응하지 않자 그를 14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당시 ㄱ씨는 두 차례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구조 요청을 보냈으나, 경찰이 다른 곳으로 출동하면서 김씨를 구하지 못했다.

김씨는 이런 혐의를 일부 부인했다. 피해자와 헤어진 것은 8월 말이기 때문에 그 전까지의 행위는 스토킹이 아니고, 범행 전날 흉기와 모자를 사긴 했지만 피해자를 살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수사기관에선 (지난해) 6월에 헤어졌다고 하는데, 제가 다시 만나자고 해서 만남을 이어가다 8월 말에 헤어지기로 합의했다. 모자를 산 것은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머리가 눌린 상태여서 쓰려고 샀고, (폭행 등으로 퇴거 조치를 한) 경찰에게 (얼굴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샀다. 흉기는 (ㄱ씨를) 죽이려고 산 게 아니라 집에 들어가기 위해 위협용으로 샀다”고 말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피해자와 여름휴가를 같이 가는 등 연인관계를 유지했었다. 이별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11월7일 피해자와의 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해자를 폭행한 건 맞다. 그러나 법원의 접근금지 잠정조치 결정으로 살해를 계획한 것은 아니다. 사건 당일 피해자 스마트워치의 경찰 목소리를 듣고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병원에 있는 등 어려운 생활을 했다. 이후 충동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성향이 생겼다”며 피고인 정신감정과 함께 양형조사를 신청했다. 양형조사란 조사담당관이 피고인의 지능·환경·범행동기 및 피해자의 피해 정도 및 가족의 상태 등 피고인의 형량을 정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요소들을 조사하는 제도다.

방청석에서 김씨와 변호인의 말을 듣고 훌쩍이던 ㄱ씨 동생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발언 기회를 얻은 ㄱ씨 동생은 “언니가 이별통보 한 게 이별 시점이다. ‘(김씨가 8월 말에) 이별을 합의했다’ 이런 말을 하는데, 언니가 무서워서, 떨면서 (다시 만나자는 말에) 알겠다고 한 것이다. 계획한 게 아니라고 하는데 흉기를 들고 간 것 자체가 그런 (살해)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화하러 가는데 누가 흉기를 들고 가느냐”며 흐느꼈다. 그는 이어 “원하는 것은 언니가 돌아오는 것인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유일한 부탁은 이 세상에서 (피고인이)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ㄱ씨의 동생을 증인으로 채택해 언니의 피해 사실 및 가족으로서 겪은 고통 등에 대해 신문하고 이를 양형에 반영할 예정이다. 검찰은 김씨의 여죄에 대한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다음 공판은 3월16일에 열린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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