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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광주학동 참사' 7개월, 현산에 행정처분 없었다···취약한 제도, 건설업계 악용 소지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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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현산·하수급업체 한솔 서울에 위치
행정처분권도 서울시·구청 제각각

재판, 대법까지 가면 처분시점 늦춰
시공·운영 계속…건설업계 악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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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지난 19일 119구조대가 상층부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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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철거공사 중 건물외벽이 무너져 17명 사상자를 냈던 광주 학동참사가 발생한지 7개월이 지났지만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은 20일 현재까지 아무런 행정처분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형참사를 두번이나 낸 현산에 가장 강력한 행정처분을 적용하겠다고 최근 언급했지만, 현행법상 ‘솜방망이’ 처분에 그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업체 불법 재하도, 알았나 몰랐나’ 관건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 ‘광주 학동참사와 관련해 현산에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하라’고 서울시에 요청했다. 광주에서 발생한 사고지만, 현산과 하수급업체인 한솔기업의 소재지가 모두 서울로 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의 처분권자 역시 서울시장이다. 그러나 광주 학동참사와 관련해 현산이 받은 행정처분은 현재까지 단 한건도 없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부 조사위가 판단한 현산의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위반 혐의는 하수급업체 관리 의무 위반과 부실시공에 대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2개 혐의 모두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고 조사권과 처분권이 분리되어 있어 행정처분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하수급업체 관리 의무 위반 혐의의 경우 현산이 행정처분을 받기 위해서는 철거를 맡았던 하수급업체 한솔기업이 먼저 행정처분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종합건설업이 아닌 전문건설업인 한솔기업의 처분권은 서울시가 아닌 해당 자치구인 영등포구청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등포구청은 한솔기업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1심 결과를 보고 처분 여부를 판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이 (한솔기업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하면 우리로서도 처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청이 한솔기업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다고 해도 현산에 대한 행정처분은 과태료 부과에 그칠 수 있다. 과태료는 시정명령 윗 단계인 경징계다. 영업정지 등과 같은 중징계를 받기 위해서는 한솔기업의 불법 재하도를 현산이 지시·공모·묵인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개는 하수급업체가 ‘우리가 알아서 (재하도를) 했다’고 하는게 업계의 관행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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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7명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국과수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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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시공일까 아닐까’ 쟁점따라 처분 안될 수도

부실시공 혐의도 쟁점의 여지가 많다. 국토부 조사위는 무리한 해체방식 등을 부실시공으로 판단해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서울시에 요청했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통상 철거는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건물을 올리는 건축·시공과는 다른 개념이다. 철거가 시공 개념에 포함돼야 부실 여부를 따져볼 수 있다”며 “현재 외부 법무법인 3~4곳 등에 법률자문을 요청하고 관련 판례를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실시공이 사실로 드러나면 건설산업법에 따라 최장 1년 이내 영업정지가 가능하지만, 자칫 이렇다할 행정처분이 내려지지도 않을 수 있다. 지난 11일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와 관련해 노형욱 국토부 장관이 “가장 강한 페널티(제재)를 줘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일각에서는 현산의 등록말소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건설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등록말소 시) 현산이 기존에 시공했거나 시공 중인 사업을 누가 받겠느냐”며 “행정주체가 판단할 문제지만, 처분이 내려지면 (현산은) 반박하는 가처분소송을 내릴 것이고 이후 법적근거가 없을 경우 역풍이 불 수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조사권이 없는 처분권의 한계를 토로한다. 시 관계자는 “국토부 조사위에서 행정처분 요청할 때 설계·시공·감리 규정 등을 위반했다고만 할뿐 누가 잘못했는지는 특정하지 않는다”며 “처분권자(서울시)는 업체의 변명자료도 다시 받고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팩트 체크를 다 못하는 데다 (해당 사건으로 관계자들이) 검찰에 기소돼도 기소 자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재판 결과를 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국토부에 ‘조사·처분 일원화’ 건의

재판이 길어질수록 행정처분은 요원해진다. 행정처분을 언제까지 내려야 한다는 등의 법적 제재 기준이 현재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중대재해 사고 등 건산법 위반사실 확인이 어려운 경우 행정처분은 처분 요청일로부터 20개월 이상 소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설업계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재판이 1심과 2심, 대법원까지 가면 행정처분 시점을 계속 늦출 수 있다”며 “해당 건설업체는 대형사고를 내고도 별다른 반성이나 개선 없이 기존 시스템 그대로 시공 및 운영을 계속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에 신속처분 태스크포스(TF)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일반건설업 행정처분심의회 등을 통해 행정처분 과정을 보강·개선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중대재해 행정처분도 6개월 이내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조사권과 처분권 일원화를 위해 건산법 시행령 개정을 국토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건산법상 행정처분은 시도지사에게 위임한다고 돼 있는데, ‘국토부 장관이 직권으로 조사한 위반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건설사업자의 건설업 등록을 말소하거나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로 하자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사권을 가지고 있는 국토부가 처음부터 사건을 조사하면서 혐의가 입증되면 바로 행정처분 하면 사고 발생과 행정처분 시점 간 갭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희·강현석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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