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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의 행차에 동원된 대한민국 군인들 [김형남의 갑을,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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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의 갑을,병정] 그런데 이걸 왜 장병들이 하죠?

2016년 10월 한강 이촌 지구에 부교(배다리)가 놓였다. 오방 깃발(황룡기, 백호기, 주작기, 현무기, 청룡기)이 휘날리는 가운데 한복을 입은 일단의 무리들이 배다리를 건넜다. 수원화성 문화제 행사 중 하나인 정조대왕 수원 화성 능 행차였다. 1795년 조선 22대 왕 정조가 회갑을 맞이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융릉)을 참배하러 간 을묘 원행을 재연한 행사다. 행차길이 닿아 있는 여러 지자체가 함께 준비할 만큼 규모가 컸다.

원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원시는 당시 행사에 참여할 인원을 무려 1900여 명이나 모았다. 그런데 시민, 용역업체에서 부른 엑스트라 등으로 구성된 행렬에는 현역 병사들도 있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지원한 600여 명의 병력이 행사에 동원된 것이다. 명목은 대민 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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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정조대왕 능행차. 어가행렬이 육군 공병부대가 설치한 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너고 있다. ⓒ '2016 정조대왕 능행차'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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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지자체 행사에 병사들이 동원된 사례는 더 있다. 대구시가 주최한 '컬러풀 대구 페스티벌'에도, 서울 관악구가 주최한 '강감찬 축제'에도 수백 명의 병사들이 대민 지원 명목으로 동원되었다. 2018년 국방부가 전투 중심 부대 운영을 강조하며 이와 같이 지자체 행사에 병력을 동원하는 일을 폐지·축소하기로 지침을 내리긴 했으나, 일부 지자체는 여전히 지역 축제에 군인을 인력으로 동원하기 위해 군에 협조를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 문화 행사에 나라 지키러 간 병사들이 동원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방부 훈령인 '대민 지원 활동 업무 훈령'이다. 훈령 제6조에 명기된 지원 가능한 사업에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공공사업이 있다.

대민 지원 가능 사업의 범위는 넓은 편이다. 통상 대민 지원에서 떠올리는 재해·재난 대처 외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시책사업, 민간 사회단체나 개인이 추진하는 공공복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에도 병력 협조가 가능하다.

실제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에 병력이 동원되어 빈축을 산 전례도 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군인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면이었다.

이걸 왜 장병이 해요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대한민국 육군 공식 페이스북에 폭설이 내린 강원 지역 대민 지원에 나선 장병들의 사진이 게시되었다. 육군은 '군의 피해를 최소화함은 물론 국민 여러분을 돕는 일에 늘 앞장서겠다'라고 글을 달았다. 그런데 이 게시물의 베스트 댓글은 '이걸 왜 장병이 해요? 나랏밥 먹는 공무원들이 해야지. 장병들이 대민 지원 나가는 게 참 이해가 안 됨. 의무만 지게 해놓고 권리는 박탈해가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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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이 대민 지원으로 제설 작업을 하는 군인들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왜 군인들에게 이런 일을 시키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2021.12.26 ⓒ 대한민국 육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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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앞선 2020년에는 국방홍보원이 '수해 복구할 땐 나를 불러줘 어디든지 달려갈게'라고 적힌 포스터를 공개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고, 2019년에는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 지원에 나선 장병들이 마스크 한 장만 착용하고 먼지 가득한 복구 현장에 투입되어 전투 식량을 먹고 있는 사진을 육군이 올렸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민이 더 이상 '군인 동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갖다 쓰는 대민 지원 제도의 기저에는 오랜 시간 병역 의무를 이행 중인 장병들을 공짜 노동력쯤으로 대해온 군과 사회의 비뚤어진 인식이 녹아 있다. 월급이랍시고 푼돈을 쥐여주며 죽으면 개죽음이요, 다치면 내 손해였던 부끄러운 시대의 잔재다. 군 스스로 병사들을 소모품 취급하며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사회가 군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병사뿐 아니라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의무경찰, 의무소방, 사회복무요원 등에게도 두루 해당되는 일이다.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재해·재난 복구에 군인이 대민 지원을 나가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 당연한 노동은 없다. 나라 지키는 군인을 동원하는 일은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지자체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써야 할 행사 엑스트라에 왜 병사들이 동원되어야 하는가?

나랏돈 아끼자고 병사들을 공짜로 동원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대민 지원 활동 업무 훈령' 상 대민지원 요건을 재해·재난 대처 등에 한정하고, 과도하게 넓게 설정된 대부분의 지원 요건을 삭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훈령에 대민 지원에 참여한 장병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병사들에게는 외출·외박·휴가 등 포상을 지급하며, 반드시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충분한 사전 안전 교육을 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에 그만한 대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착취이자 강제 노역일뿐이다. 사기 진작은 시대착오적인 위문편지니 공연이니 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존중받는 병역 의무는 국가와 군이 만들어가야 할 몫이다. 군인도 군복 입은 시민이다.

김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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