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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우리 고장 먼저…‘이건희 컬렉션’ 순번 다툼에 ‘쪼개기’ 순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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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부산·광주·창원서 동시 개막

지자체 물밑경쟁에 정치적 고려한 듯


한겨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차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전시장. 이 전시에 나온 일부 작품들이 오는 10월 시작되는 지역 순회전에도 출품될 것으로 보인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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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1순위 도시는 부산과 광주, 경남 창원으로 굳히기 들어갔습니다.”

최근 <한겨레>와 만난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나라에 기증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컬렉션은 오는 10월부터 부산·광주·창원에서 일제히 개막하는 지역미술관 전시회를 시작으로 내후년까지 순회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건 순회전 첫 전시를 세곳에서 동시다발로 연다는 점. 전시 일정을 조율해온 문체부와 산하 국립현대미술관 쪽은 지난해 말 광주와 창원을 첫 개최지로 정했고, 새해 들어 부산을 추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건희 컬렉션의 전체 작품·유물은 2만3000여점. 국립미술관에 기증된 국내외 근현대미술품 1400여점 가운데 서울관 특별전 출품작 60여점을 주축으로 미공개 작품들과 지방자치단체 미술관에 기증된 일부 작품들까지 묶은 세가지 전시 꾸러미(패키지)를 지역별로 따로 돌려가며 전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립박물관에 기증된 고미술·고고유물·문서류 2만여점의 전시 일정은 또 다르다. 10월 국립광주박물관을 시작으로 지역 국립박물관을 돌며 별도의 순회전을 벌이는 쪽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유명 컬렉션 순회전을 서너갈래로 쪼개어 치르는 건 세계적으로도 선례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순번 정하기가 민감한 탓이다. 지난해 하반기 문체부가 산하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위원장 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를 통해 국립미술관 쪽과 순회전 일정 조율에 착수하자 ‘우리 고장 먼저’를 내세운 각 지자체와 산하 미술관들의 물밑 경쟁과 암투가 불붙었다.

애초 유력한 첫 순회전 도시로 꼽혔던 곳은 기증관 유치 의사를 처음 표명했던 부산시였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첫 전시 장소로 배려하겠다는 언질까지 줬다는 게 부산시립미술관 쪽 주장이다. 그러나 국립미술관 분관 신설을 추진해온 창원시가 예상을 뒤엎고 첫 개최 도시로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열린 전국 국공립미술관 관장 회의를 통해 오는 10월 광주와 창원에서 순회전을 시작하고 내년에 대구와 울산에서, 내후년에 대전과 부산에서 전시한다는 순번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순번에서 밀린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과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은 “지역 균형에 어긋나는 일방적 처사”라고 반발했고, 순회전 추진 주무를 맡은 김준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과 1순위 결정 근거를 둘러싸고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이달곤, 최형두 등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창원 지역구 의원들이 문체부에 적극적인 민원을 넣어 1순위로 낙착됐다는 말이 미술계에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 뒤 부산 지역 지자체와 문화계 반발이 거세지자 문체부가 지역 여론을 의식해 부산을 순회전 첫 도시로 끼워 넣었다는 뒷말도 나왔다. 결국 순회전 쪼개기는 일정 조율을 맡은 문체부와 국립미술관 쪽이 지역에 대한 정치적 고려를 거쳐 내놓은 고육책이 된 셈이다.

첫 순회전 도시의 윤곽은 잡혔지만, 지난해 말 공표했어야 할 전체 전시 일정과 출품작 내역은 여전히 발표 시점을 확정하지 못하고 내부 검토를 거듭하는 실정이다. 국립미술관 사정에 밝은 미술계 한 관계자는 “순회전 준비가 지지부진한 데 대해 미술관과 문체부 컬렉션활용위 사이에 책임을 떠넘기는 신경전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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