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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자24시] 복지부의 기습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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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보건복지부가 지난 18일 저녁 7시 10분 예정에 없던 보도 참고자료를 냈다. '국민연금기금 대표소송 관련 안내'라는 별 뜻 없는 제목으로 나왔기에 많은 기자들이 관심 없이 넘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저녁 식사 중일 때 낸 자료라 주목도는 더욱 떨어졌다.

복지부는 기습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갖고 있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에 넘겨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는 이런 내용의 국민연금기금 운용 지침 개정안이 "적시성 있고 일관된 의사 결정 체계를 갖추기 위함"이라고 옹호했다. 복지부는 그러면서 "수책위는 금융·법률·회계 분야 민간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엄격한 사전 검토 절차를 거쳐 대표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소송 남발을 염려하는 기업들을 안심시키려는 설명도 보탰다.

복지부는 국민연금공단의 상급 기관이다. 그러나 1000조원을 운용하며 국민의 노후 연금을 책임지는 특성상 국민연금기금과 관련된 현안은 독립성·전문성을 확보한 최고 의사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하도록 돼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이기도 한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최근 기자에게 "이번 지침 개정에 대해 복지부가 별도 입장을 낼 일은 없다. 전적으로 기금위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복지부는 갑작스러운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지침 개정에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이르면 다음달 중 지침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복지부가 사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다. 기금운용위원은 복지부 장관 외에 사용자·근로자, 지역가입자 대표, 학계 전문가 등 19명으로 구성되지만 복지부의 명확한 메시지를 무시하긴 어려운 노릇이다.

기업들은 지침 개정안이 통과되면 시민단체와 노동계 입김이 센 수책위가 대표소송을 남발해 경영권을 침해당하지는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논란이 거센 사안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슬그머니 넘어가려는 듯한 복지부의 태도는 더 큰 문제다. 다음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도 어물쩍 지침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건 아닐지 염려스럽기만 하다.

[경제부 = 이종혁 기자 2jhyeo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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