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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말만 충남이지, 전철 다니고 수도권 다 됐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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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천안·아산’ 르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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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두정동 먹자골목에 새벽 5시부터 영업을 하는 업소를 알려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안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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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역 인근 새벽부터 북적
시내버스 환승할인도 앞둬

수도권보다 기업 규제 적어
작년 유치 실적 ‘역대 최대’

대학 14곳 덕 젊은층도 유입
1995년 이후 인구 2배 늘어

토요일인 지난 15일 오전 10시,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 두정먹자골목. 고기를 파는 M식당이 젊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2~4명씩 들러앉은 상당수의 테이블에는 소주와 맥주 등 술도 놓여 있었다. 주변의 상당수 식당도 상황은 비슷했다.

“여기는 아침과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요. 오전부터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 많아요. 손님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행정구역만 충남이지 두정동을 비롯한 천안 지역, 넓게 보면 아산의 일부 지역까지 실제로는 서울 한복판이라고 보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시민 이모씨(53)는 두정동·신불당동 등을 중심으로 점점 수도권으로 변해가는 천안·아산 지역의 실상을 상세히 설명했다. 골목 중심부에는 새벽 5시부터 문을 여는 음식점·술집 26곳을 알려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코로나19로 야간 영업이 제한되다 보니 새벽부터 또 다른 ‘밤문화’를 만끽하려는 분위기가 상술과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씨는 “서울 홍대나 건대앞 상권 이상으로 두정동에 젊은층이 몰리고 있다”면서 “이곳에서는 새벽 5시 이후 오전 시간에 술을 마시는 것이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된 느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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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전철 이용객들이 토요일인 지난 15일 오전 두정역 내부를 오가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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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각, 천안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두정역, 토요일인데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중에는 두정동 등 천안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찾은 젊은이들도 있었다. 전철 한 번만 타면 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수도권에서 한꺼번에 몰려드는 손님을 막기 위해 동네를 폐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천안시는 지난해 9월 수도권과 연결하는 핵심 통로인 이 일대에서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두정동에 있는 ‘원두정먹거리공원’을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 폐쇄하는 조치를 상당 기간 취했다.

‘수도권 전철-천안 시내버스, 환승할인 3월19일 시행’.

최근 천안시내 곳곳에는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수도권 전철과 천안 시내버스 사이에 무료 환승이 곧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시민들은 경부선 평택역∼천안역 구간, 장항선 천안역∼신창역 구간의 광역전철과 천안의 시내버스를 환승하는 경우 할인 혜택을 받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일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면서 크게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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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천안 시내 거리에 오는 3월19일부터 수도권전철과 천안 시내버스의 환승할인이 시행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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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아산 지역의 수도권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규제완화로 기업과 대학들이 교통망이 편리한 천안·아산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수도권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 지역 인구는 최근 20여년 사이 2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이 지역에 정착한 기업들도 사상 최대였다.

천안과 아산은 수도권과 가까우면서도 경부고속도로, KTX, 수도권 전철 등 전국과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갖춰진 상황에서 각종 수도권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요즘은 외국에서 국내로 되돌아오는 기업들도 이 지역으로 몰린다.

천안시가 지난해 유치한 투자 규모는 3조4068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무려 302개 회사를 유치하면서 9038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지난해 3월 공단 조성을 시작한 북부BIT산업단지의 경우 8개월 만에 분양이 100% 완료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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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인근 아산시도 비슷하다. 아산시 역시 2021년 역대 최고의 기업 유치 실적을 올렸다. 아산시가 2021년에 유치한 기업은 41개이고, 투자금액은 1조2491억원에 이른다. 아산시의 2021년 투자 유치 실적은 전년의 2배나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천안·아산 지역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천안·아산의 투자 유치 금액은 충남 지역 15개 시·군 전체가 유치한 것의 80%가 넘는다.

천안·아산 지역의 수도권화를 이끈 원인 중 하나로 대학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천안·아산 지역에는 무려 14개의 대학이 몰려 있다. 이 중 상당수 대학의 재학생 중 70% 이상은 수도권 출신이다. 아산에 있는 순천향대의 경우 수도권 지역 학생의 비율이 75%에 이른다. 순천향대 관계자는 “수도권 전철의 역(신창·순천향대역)이 생기면서 수도권 쪽 학생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아산의 성장세는 인구 증가 추이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천안시와 천안군이 통합한 1995년 당시의 인구는 약 33만명이었지만, 2021년 말 인구는 68만5246명으로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돼 아산시가 출범한 1995년 당시 인구는 15만4775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아산시 인구는 35만1618명으로 역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수도권과 천안·아산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수도권 전철과 KTX다. 수도권 전철의 경우 천안시에 성환, 직산·두정·천안·봉명·쌍용 등 5개 역을, 아산시에 아산·탕정·온양온천·신창 등 4개 역을 각각 두고 있다. 천안아산역이 있는 고속철도 KTX는 서울(서울역)과 이 지역(천안아산역)을 불과 30분 만에 연결한다.

천안·아산 지역의 수도권화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나사렛대(천안)의 양현홍 생활관장은 “천안·아산 지역의 수도권화가 우리 대학 재학생을 포함한 지역민들의 생활편의와 문화 수준을 높이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하지만 천안·아산이라는 지역이 갖고 있는 정체성까지 수도권화되는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천안·아산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지자체와 지역민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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