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서울신문, ‘대주주 호반’ 비판기사 삭제…편집권 침해 논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년전 보도 ‘호반건설 대해부 기획’

온라인 기사 50여건 일괄 삭제에

언론노조·내부 반발 성명 잇따라

소유자본의 ‘편집권 침해’ 본격화 우려


한겨레

서울신문 사옥.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신문>이 대주주인 호반그룹과 관련한 비판적 기사를 대거 삭제한 데 대해 ‘편집권 침해’라는 내부 비판이 이어지자 대주주인 김상열 서울신문사 회장이 직접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시공건설능력 10위권의 호반건설은 광주방송을 판 이후 인터넷 경제지 <이비엔>(EBN)과 <전자신문>에 이어 종합일간지인 <서울신문>까지 잇따라 인수해왔다. 언론계 안팎에선 소유자본의 입김이 본격화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신문 구성원들에 따르면 18일부터 내부 게시판엔 이번 기사 삭제와 관련해 사장과 편집국장 등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기수별 성명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2019년 입사한 공채 52기와 이를 지지하는 48기 성명에 이어 19일엔 46기, 47기, 51기의 성명도 잇따랐다.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도 18일과 19일 각각 ‘118년 서울신문에 먹칠하지 마라’는 성명‘서울신문의 저널리즘 본령은 어디에 있나’ 성명을 냈다.

지난 16일 황수정 편집국장은 부장단 회의에서 2019년 서울신문이 연속보도한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획’ 온라인 기사를 일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지했다. 삭제 대상은 2019년 7월15일부터 11월 25일까지 특별취재팀 바이라인을 달고 출고된 기사 50여건으로, 그 중 20여건은 지면 1면에 나간 것이다. 당시는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의 포스코 지분을 인수해 3번째 주주가 되며 ‘건설자본의 종합일간지 인수 시도가 시작됐다’는 말들이 나오던 때다. 호반건설 그룹의 편법승계 의혹 및 부당내부거래 등을 파헤친 이 시리즈 보도 이후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는 호반그룹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엔 공정위의 제재 착수 보도도 나왔지만 호반그룹은 이를 부인한 바 있다.

황 국장은 회의에서 △곽태헌 사장이 기사 삭제를 결정했고 △사장·편집인·사주조합·노조·호반티에프(TF)팀장·편집국장이 참여한 6인협의체를 통해 최종결정됐다고 설명하며 “편집권 침해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기수들 성명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전 경영진 체제 때 호반건설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사 삭제를 결정한 적이 있다는 설명도 이후 더해졌다. 이와 관련해 내용을 잘 아는 서울신문 관계자는 “당시는 사주조합이 호반건설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되려고 할 때다. 협상을 원활하게 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지금과는 상황이 반대였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은 반발했다. 52기들은 “수개월에 걸쳐 출고한 기사 수십건을 삭제하면서 편집국 기자들과 공론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통보가 이뤄졌다”며 “사장이 기사 삭제를 요구 내지 지시하고 편집국이 이를 그대로 따르는 상황을 우리는 ‘편집권 침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51기들은 “온라인 기사라도 잘못 나가면 경위서를 쓴다. 징계도 받는다. 그런데 몇달간 수많은 기자들이 함께 쓴 기사를 모조리 삭제하고 한마디 말도 없다”며 “독자들에겐 어떻게 비쳐지겠나. ‘편집권 침해’와 다르다는 편집국장 말에 독자들이 동의할까”라고 물었다. 6인협의체에 참석한 노조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라는 요구와 함께 일부에선 노조 탈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황수정 편집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금, 그리고 앞으로 쓰는 기사에 대해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편집권 침해다. 다만 이번 건은 집행이 안됐던 지난해 협의 결정 사항이 회사의 결정으로 집행된 것이라서 ‘편집권 침해는 아니라고 본다’는 표현을 썼던 것” 이라며 “앞으로 보도를 지켜보고 평가해달라”고 말했다.

호반그룹 창업주인 김상열 서울신문사 회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신문사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편집권 독립 보장은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당시 4개월이 넘게 반론의 기회조차 없이 지속된 일방적 기사들로 인해 호반그룹은 큰 상처를 입었음을 물론 서울신문 또한 대내외적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다. 어렵게 골을 메우고 새 가족으로 출발하는 시점”이라며 “누구나 원하면 시간을 내서 기사의 사실관계에 대해 대화의 시간을 갖겠다. 그 기사의 진실성이 밝혀진다면 회장 직권으로 다시 게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쪽의 이런 해명이 언론계 안팎의 의구심을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독립언론’을 내건 서울신문 사주조합의 호반건설 지분 인수 시도가 최종 무산되고 조합원들이 호반 쪽에 사주조합 지분 전체를 넘기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우려됐던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엔 주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언론자유에서 핵심이었다면 점점 경제와 자본의 문제가 커지고 있다. 기업의 언론사 소유는 그 대표적 사례인데, 대주주가 바뀐 지 몇달 안된 시점에 이러니 앞으로 더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사회적으로 언론 소유자본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짚었다. 그는 또 “편집권 독립 문제는 단순히 신문사 내부 주주와 구성원의 관계가 아니라 서울신문 존재의 문제다. 내부 문제를 제대로 비판 못하는 언론사의 기사를 시민들이 어떻게 신뢰할수 있겠는가. 서울신문 구성원에겐 직업인이냐 언론인이냐라는 질문이 던져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선임기자 dora@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