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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살인 고백' 나이키 조던 회장, 56년만에 유족만나 "안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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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밀러 나이키 조던 회장.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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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도 될까요?” 지난해 12월 17일 필라델피아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살인범과 피해자 유족이 만난 자리.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살인범을 피해자의 누나 바바라 맥(84)은 “그럼요”라며 56년 전 동생을 앗아간 그 남자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살인범은 나이키의 대표 브랜드인 ‘조던’ 회장 래리 밀러(73). 그가 지난해 10월 인터뷰에서 평생 숨겨왔던 과거를 고백한 지 2개월 만에 성사된 자리였다.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시간) 최근까지 두 차례 이뤄진 이들의 만남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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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미국 식품회사 크래프트 푸드와 캠벨 수프를 거쳐 1997년 나이키에 합류해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대표 브랜드인 조던 회장을 지냈다. 2007년 NBA의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드 구단주로 5년간 팀을 이끈 뒤 2012년 조던 회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조던 재임 중 수익을 두 배로 늘리는 등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했지만, 평생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자녀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살인 전과범이라는 비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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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조던 브랜드의 래리 밀러 회장. 연합뉴스


유복한 집안의 8남매 중 셋째인 밀러는 ‘반에서 가장 똑똑한’ 모범생이었다. 사춘기 탓인지 이유 없이 13살 갱단에 합류해 방황하기 시작했고, 그를 평생 괴롭혔던 그 범죄를 저지른 건 1965년 9월 30일 그가 16살 때다. 밀러는 술을 마시다 다른 갱단의 칼에 찔려 숨진 친구의 복수를 한다며 길거리에서 처음 마주친 남자를 총으로 쐈다. 2급 살인 혐의로 4년 반, 무장강도 등 혐의로 5년을 더 감옥에서 보냈다. 감옥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한 그는 출소 후 30살에 대학에 들어가 1985년 MBA까지 마쳤다.

밀러는 화이트 가족을 앞에 두고 연신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이 자리엔 화이트가 숨진 당시 8개월이었던 아들 하산 애덤스(57)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은 딸 아지자 알라인(56)도 있었다. 맥은 밀러에게 식당에서 일하던 화이트가 패션 감각이 뛰어난 멋진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평생 ‘아버지의 유령 같다’는 말을 들었다는 애덤스 역시 최근에야 아버지가 당한 일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 역시 밀러를 용서했다고 맥은 NYT에 밝혔다.



“만나려고 했지만 두려웠다…장학재단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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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래리 밀러가 쏜 총에 맞아 숨진 에드워드 화이트의 유족. 왼쪽부터 아들 하산 애덤스와 딸 아지자 알라인, 누나 바바라 맥.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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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인은 밀러에게 원망을 감추지 않았다. “나를 향해 웃어줄 아빠의 얼굴도 목소리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나는 내 결혼식에서 손잡고 들어갈 아빠가, 내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없었다”면서다. 그는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아빠를 두 번 잃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밀러가 인터뷰와 18일 출간한 자서전 『점프: 거리에서 임원실까지 비밀 여정』에서 화이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점을 들어 “밀러에게 우리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밀러는 이에 “여러분께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고, 행방을 알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하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을 만나는 건) 너무 긴장됐고 진심으로 걱정됐다”도 말했다. 밀러는 NYT에 “이번 만남은 ‘제자리 찾기’였다”고 했다. “평생 봉사하면서 스스로 용서하려고 노력했고, 화이트 가족도 나를 용서할 수 있다면 내가 비로소 온전한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다.

밀러는 두 번째 만남에서 화이트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밀러는 “화이트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고 그의 가족과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맥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용서했는데) 다시 만날 필요가 없어서”다. 아직 100% 용서하지는 못했다는 알라인 역시 “증오 속에 살 순 없다. 언젠간 완전히 용서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그는 “얼마든지 사과하고 용서받을 순 있지만, 결국 스스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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