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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어린이집 대기 100명…구청장실 문 두드렸더니 '극성 맞은 엄마'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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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기자] 【베이비뉴스 김정아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베이비뉴스는 대선을 앞두고 육아와 생계를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빠·엄마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기자 말

"아이를 안고 제가 사는 지역 구청장실 문을 두드렸어요.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맡기고 복직을 해야하는데 우리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이 없습니다. 정원을 다 채워 원아모집을 하지 않는 어린이집들이 인가 받은 정원만큼 아이를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제 민원에 대한 답으로 구청에서는 어린이집을 지어주셨어요. 만 3~5세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어린이집을요."

정유선(35) 씨는 교육공무원이자 6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다. 워킹맘인 그녀의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아침을 먹여 유치원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직장에 도착해 주어진 일을 무사히 마치고 아이를 하원시켜 집에 오면 바쁘게 저녁 준비를 하면서 아이를 중간중간 놀아줘야 한다. 빨래, 청소, 설거지 등의 집안일과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것으로 정 씨의 바쁜 하루가 끝이난다. 분명 '맞벌이' 부부이고 '워킹맘'인데, 왜 육아는 오롯이 정 씨의 몫인 것일까?

"남편은 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다보니 근무시간이 저보다 절대적으로 더 길어요. 공무원인 저보다는 고용이 불안한 상황이다보니 자기개발에 더 시간을 써야하고요. 유연근무제를 쓸 수 없다보니 등원이나 하원을 남편이 맡아서 할 수도 없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일을 하고 있지만 제가 육아를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또 아이가 예민한 기질을 갖고 있어서 엄마가 아니면 손길을 거부하고 엄마를 적극적으로 찾기 때문에 제가 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예요."

정유선 씨는 교육공무원이기 때문에 '육아시간' 제도를 활용해 하루 6시간만 일을 하고 있다. 육아시간은 만 5세 이하(생후 72개월 이전까지)의 자녀를 가진 공무원이 24개월의 범위 내에서 1일 2시간의 육아시간을 받아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 또는 근무시간 중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 덕분에 정유선 씨는 조부모님이나 등하원도우미 등의 도움 없이 아이 등·하원을 도맡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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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원이라 비교적 육아휴직은 쉽게 썼지만 복직할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는 정유선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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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맡길 곳 없어 복직을 못할까 발 동동…구청에 민원 넣기도

이처럼 정유선 씨는 '육아시간'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고, 육아휴직도 비교적 눈치보지 않고 낼 수 있는 공무원이기에 일반 기업에 다니는 직장맘들보다는 아이를 키우는데 좋은 조건을 갖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 씨 역시 아이를 출산하고 복직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이를 낳자마자 직장 근처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놨었어요. 어린이집 대기 순번이 돌아오고 복직을 앞둔 어느날, 아이를 차에 태우고 등원 시뮬레이션을 해봤어요. 그런데, 제 생각과 달리 이제 갓 돌지난 아이를 데리고 매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차에 태우고 50분 거리에 있는 직장 근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후 출근한다는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더라고요. 뒤늦게 집 근처 어린이집 0세반에 대기를 걸었지만 대기가 100번이 넘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단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복직도 어렵겠더라고요."

정유선 씨가 복직을 위해 0세 아기를 받아주는 어린이집을 찾아 헤매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인가 받은 정원보다 더 적게 원아를 모집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이 있었던 것. 이것만 해결해도 아이가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던 정유선 씨는 결국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들과 함께 아이를 안고 구청장실 문을 두드렸다.

민원을 제기한 결과, 지역 내에는 어린이집이 한 군데 새로 생겼다. 이 때문에 지역 내 어린이집 원장님들에게 지탄도 받았다. '어느 극성 맞은 엄마들이 민원을 제기해서 어린이집이 새로 생겼고 이로 인해 경영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민원을 제기 한 유선씨의 아이는 당시 0세, 새로 생긴 어린이집은 3~5세를 위한 곳이었다. 물론 어린이집이 개원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아이는 클 테고 복직은 해야하기에 유선씨는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한 일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 씨는 집에서 거리는 좀 있지만 등원을 도와주실 수 있는 친정 부모님 댁 근처 가정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복직을 하게 됐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부모님댁 1층에서 부모님께 넘겨드린 뒤 직장으로 달려가는 날들이었습니다. 당시 일하던 직장은 육아휴직을 낼 때 배려를 많이 해주셨고 그에 항상 감사해요. 하지만 '육아시간' 제도를 활용하기엔 어려운 곳이었어요. 싱글일 때 일하기 좋은 직장과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기 좋은 직장은 결이 다르더라고요. 그런 어려움 때문에 고민하다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 "모든걸 여자가 감당해야한다는 걸 알았다면 아이 못낳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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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육아를 하며 일을 하는 것이 때로는 내 욕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맞벌이 워킹맘 정유선씨. ⓒ정유선씨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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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부부이자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정유선 씨에게 더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유선씨는 육아휴직을 쓰게 되면 일반 사기업의 경우 회사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육아휴직 대체자를 채용해야 한다거나 혹은 남은 인력이 육아휴직을 간 사람의 일을 나눠서 해야하다보니 육아휴직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

"육아휴직 급여라든가, 육아휴직 대체자 채용에 있어서 국가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기업에만 책임을 지우면 여자를 뽑고싶지 않을 것 같아요. 육아기 단축근로를 쓰는 경우도 근무 시간은 줄어도 업무 강도는 줄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문제도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단축근로를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정 씨는 말했다.

"전문성을 추구하는 직종일수록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사회적 구조인 것 같아요. '육아 할래, 전문성을 키울래' 양자택일을 하게 하죠. 그렇게 되면 한국 사회에서 주로 엄마는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빠는 육아를 포기하게 되고요. 시스템적으로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육아를 온전히 감당하게 할 게 아니라 국가에서 함께 감당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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