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황성기 칼럼] ‘대깨~’ 아닌 유권자를 위해/논설실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신문

황성기 논설실장


대통령 선거가 3자 구도로 굳어졌다. 다시 대선판으로 돌아온 심상정을 넣으면 2강 1중 1약이다. 윤석열의 아마추어리즘이 역설적으로 판을 키웠다. 바닥의 안철수를 소환해 비호감 레이스이던 대선에 활력을 넣었다. 냉소적이던 유권자를 선거에 한 발짝 다가서게도 했다.

정권교체를 내세운 윤석열과 안철수의 합종연횡은 설 연휴 최고의 화젯거리다. 연휴를 보내고 바닥 민심을 확인한 두 진영의 단일화 혹은 연합 시도가 대선판을 흔들 것이다. 윤과 안의 단일화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그중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같은 화학적 결합이 최상위다. 정치 9단, 10단이던 두 김. 그렇지만 정치 기반은 정반대인 두 지역과 세력의 연합이라는 한국 정치사에 유일무이라 여겨졌던 ‘짝짓기’가 재현된다면 최근 여론조사 같은 단일화 결과에 다가선다.

정치 경력 6개월과 10년짜리 정치인이 과거의 정치 고수 뒤를 따를 수 있을까. 하지만 흉내를 못 낸다면 ‘정권교체’는 5년 뒤를 기약해야 한다. 이재명은 이들 연합을 무산시켜야 정권재창출 혹은 ‘정권 내 정권교체’를 내다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3개월여 남았다. 5년 성적을 매겨 보지만 후한 점수를 주긴 어렵다. 2017년 4월에 나온 대통령 후보 공약집을 봐도 그렇고, 몇 차례 갱신된 ‘100대 국정과제’를 들춰도 마찬가지다.

2020년판 ‘100대 국정과제’의 1번 항목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다. 최순실 등이 단죄를 받아 구적폐는 청산됐을지 몰라도 그 자리에 들어선 ‘조국’ 등 신적폐는 어쩌란 말인가. 1번부터 가위표다. ‘국민 눈높이 맞는 좋은 일자리’(16번)에 이르러서는 실소를, 코로나19로 2년째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역량 강화’(28번)에선 분노를, ‘미래 세대 투자를 통한 저출산 극복’(48번)에선 허탈감만 남는다.

20대 대선은 미래를 여는 길목이다. 그러나 후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는지 아는 유권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열렬 지지자들은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 후보여서, 윤석열이 국민의힘 후보라는 이유 하나로 열광한다. 이들 ‘대깨명’(대가리가 깨져도 이재명), ‘대깨윤’(대가리가 깨져도 윤석열)을 30% 안팎이라 치자. 이들 ‘대깨~’ 유권자에겐 후보의 철학이나 이념, 미래의 청사진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부동층이라 불리는 나머지 30~40%는 그렇지 않다.

이번 대선은 ‘소확행 공약’(이재명), ‘심쿵 약속’(윤석열) 같은 이해집단을 노린 핀셋 공약이 대세다. 하지만 국민이 바보인가. 학습이 쌓여 공약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똑똑한 국민들이다. 이재명의 ‘1555’나 안철수의 ‘555’가 우리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윤석열의 병사 200만원 월급은 재원이나 생각했는지. 현직 대통령의 국정 과제조차 낙제점인데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후보들 말의 성찬을 보면서 실망은 깊어진다.

향후 5년은 선진국 문턱에 발을 걸친 한국이 경제·외교안보에 안정을 다지며 한 걸음 나아갈 시기다. 여러 대통령이 그랬듯 새 행정부는 이 나라를 후퇴만 시키지 않으면 된다. 국력은 국민의 노력, 기업의 분발, 행정·입법부 실력의 총합이다. 후보들이 전지전능인 것처럼 말하지만 대통령은 권력만 비대할 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위해 힘을 모으고, 기업이 잘 돌도록 하고, 국회가 180석 횡포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견제하면 한국은 진짜 선진국에 근접한다.

윤석열·안철수가 단일화하든 각자 출마하든, 이재명이 연합을 저지하든 ‘대깨명윤’ 아닌 유권자에겐 상관없다. 이들 행보는 중도로 수렴 중이어서 차별성도 없다. 3명 중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이다. 아직까진 누구 하나 대한민국 일보 전진의 최적임자란 믿음이 들지 않는다. 남은 49일, 목에 턱 걸린 정치 냉소가 해소될지엔 부정적이지만 그러길 바랄 수밖에.

황성기 논설실장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