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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뉴스룸에서] 경매대 오른 간송의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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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에서 국보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오른쪽)과 국보 '금동삼존불감'을 전시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국보 2점은 오는 27일 열리는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 출품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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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간송 전형필의 숙원이었던 국내 첫 사립박물관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이 완공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평양의 대수장가인 김찬영이 수장품들을 대거 내놓았다. 그중 조성 연대까지 새겨진 귀하디귀한 삼국시대 삼존불이 있다는 소식에 간송의 눈이 둥그레졌다. 물밑 흥정이 시작됐는데 부르는 값이 엄청났다. 당시 기와집 100채 가격인 10만 원. 그래도 어렵게 나타난 삼존불이 또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도록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몇 차례 협상을 거쳐 7만 원에 넘겨받았다.

이듬해 간송은 골동품상 이희섭이 일본에 팔려고 한 불감(佛龕) 이야기를 듣는다. 아주 작은 절집 안에 삼존불을 모신 흔치 않은 작품이다. 협상을 통해 12만 원까지 내려갔지만 간송이 이제껏 구한 물품 중에선 가장 고가였다. 간송은 거금을 쏟아붓고 구한 불감을 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불감을 안방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았다.

광복이 될 때까지 공개할 수 없었던 이 불상들은 1962년 12월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과 ‘금동삼존불감’이란 이름으로 각각 국보 제72호, 제73호에 지정됐다. 안타깝게도 간송은 그해 1월에 세상을 떠나 낭보를 들을 수 없었다.

간송이 거두고 지킨 이 불상들이 최근 경매에 등장했다. 국보가 경매에 올라온 건 처음이다. 간송미술관은 2020년 5월에도 보물로 지정된 불상 두 점을 경매에 출품해 파문을 일으켰다.

간송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마구잡이로 우리의 문화재들을 약탈해가는 모습을 보고 사재를 털어 지켜낸 유산이다. 간송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음에도 유유자적 사는 대신 이 땅에 빛나는 보배를 남기는 문화보국의 뜻을 세웠다. 후에 간송이 수집한 문화유산 중 12점은 국보로, 10점은 보물로 지정됐다.

간송의 국보가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에 당혹스러웠다. 간송미술관 측은 재정적 압박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부의 문제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니 마냥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또 아무리 궁하고 급하다 해도 굳이 국보를 경매에 내놔야 했을까.

지난번 경매에 나온 간송의 보물급 불상 두 점은 유찰돼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거둬들였다. 그럼 이번엔 국보이기도 하니 국립중앙박물관하고 먼저 상의를 했어야 하지 않나. 최소한 먼저 간 보물급 불상들과 함께 박물관 내 간송 컬렉션이라도 구성할 수 있도록 말이다. 박물관에서 힘들다 하면 그때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순리였을 것이다.

문화재 전문가는 “그럼에도 국보가 경매에 바로 올라온 건 더 많이 받아 보겠다는 소장자의 욕심과, 초대형 국보 경매라는 홍보를 노린 케이옥션의 욕심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라며 “국보를 놓고 함부로 벌이는 상술이 씁쓸하다”고 화를 삭이기도 했다.

국보는 보물과는 차원이 다른 우리의 자부심이다. 국보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라 했거늘, 경매대에 올라 가격표가 붙을 국보의 처지에 마음이 쓰리다. 마치 발가벗겨진 채 저울에 올라간 느낌이랄까. 간송미술관이 연이어 선택한 경매는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신’이라는 간송의 신화에도 균열을 낼 것이다.

이번 경매로 국보와 간송이란 브랜드가 입는 타격은 상당하다. 더 늦기 전에 국보와 간송의 위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성원 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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