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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재판 중이고 5년 지났다? 감사원의 석연찮은 ‘대장동 감사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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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중이고, 5년 지났다”는데…

2019년까지 사업협약 바뀌었고 재판 중 사안도 감사 전례 있어

수사·재판 20여건 걸린 ‘스카이72′는 감사… “대장동은 불가”

감사원이 최근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를 기각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이에 대한 ‘수사·재판이 진행 중’이고 ‘감사 청구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감사원 판단이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이 과거 수사·재판 중인 사안을 감사한 전례가 있고, 감사 청구 기간도 아직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원 안팎에선 “11년간 성남시 감사를 하지 않던 감사원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로 감사를 종결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선일보

서울 북촌로에 위치한 감사원 전경./이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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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대장동 주민 550명과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0월 대장동 개발 사업에 대한 공익 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그런데 감사원은 지난달 20일 이를 최종 기각했다. 이 감사 청구의 핵심은 민간 시행사인 화천대유가 출자금의 1154배에 달하는 배당금 등 8000억원 넘는 이득을 챙길 수 있게 한 사업 설계 과정을 감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감사원은 A4 용지 6쪽짜리 결정문에서 우선 ‘감사 청구 기간 5년이 지났다’는 점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감사원은 결정서에서 ‘이 청구 사항은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개발 사업 (특수목적법인인) 성남의뜰과 체결한 2015년 6월의 사업 협약과 주주 협약에 관한 것인데, 이는 감사 청구 시점(작년 10월)을 기준으로 5년이 경과했다’고 적었다. 공익 감사 청구 처리 규정엔 ‘감사 청구는 해당 사무 처리가 있었던 날 또는 종료된 날부터 5년이 경과하면 제기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 사업의 이익 배분 내용 등을 담은 사업·주주 협약이 체결된 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났기 때문에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장동 개발 사업의 사업 협약과 주주 협약은 2015년 체결된 뒤 2019년까지 각각 3차례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화천대유에 지급할 ‘자산 관리 수수료’ 한도가 90억원에서 128억원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이에 관가와 법조계에선 “화천대유에 몰아주기식 사업·주주 협약이 최종 변경된 2019년부터 감사 청구 기간을 계산했어야 했다”며 “감사원이 대장동 감사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준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동일한 목적에 따라 연속적으로 대장동 사업·주주 협약이 변경됐다면 이것은 형법의 ‘포괄일죄’처럼 하나의 비위 의혹 사건이 될 수 있다”며 “포괄일죄가 최종 범죄 종료 시점을 공소시효의 기점으로 보듯이, 이 사안 역시 최종 사업·주주 협약 완성 시점(2019년)을 감사 청구 기간의 기점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했다. 감사원의 기각 사유가 궁색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또 “화천대유가 대장동 개발 구역 15개 부지 중 5개를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 계약으로 받은 특혜 의혹을 감사해 달라”는 청구에 대해서도 ‘이 역시 2015년 사업 협약에 관련된 것으로 이미 5년이 경과했다’고 밝혔다. 화천대유에 4000억원 이상의 이득을 안겨준 ‘5개 부지 수의 계약’ 내용은 2015년 협약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감사 청구 기간이 지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화천대유가 5개 부지를 수의 계약을 통해 실제 확보한 시점은 2017년 4월이다. 이 사실은 경기도에 보고됐고 관련 업무 처리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감사원 공익 감사 처리 규정의 ‘해당 사무 처리가 종료된 날’을 2017년 4월로 보고 감사에 착수해도 되는데, 감사원이 굳이 협약 체결이 이뤄진 2015년을 기준으로 삼아 청구를 기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은 기각 사유로 ‘5년 경과’ 외에 ‘수사·재판 중’이라는 점도 들었다. ‘수사·재판 중인 사항은 감사 청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감사원 내부 규정에 따라 감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규정엔 ‘수사·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 감사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도 있다. 감사원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유의 골프장인 ‘스카이72′의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수사·재판이 20여 건에 달하는데 감사원은 작년 초 이 사건의 특혜 의혹을 감사해 달라는 민간단체의 공익 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현재 감사를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2017년 1월에도 당시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이던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문체부가 문화예술진흥기금 등 보조금을 적정하게 집행하고 있는지를 감사했는데, 청와대가 문체부를 시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와 단체에 보조금을 끊도록 했다는 특검의 ‘문체부 블랙리스트’ 수사와 겹치는 ‘중복 감사’라는 언론의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감사원은 “감사원 감사는 단순히 수사나 재판이 진행될 경우 일률적으로 감사를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안이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심각성, 국민적 관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고 했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 논리대로라면 감사원은 전 국민적 관심사인 대장동 비리 의혹 감사에 착수했어야 한다”며 “결국 감사원의 의지 문제”라고 했다.

감사원은 2010년 11월 대장동이 있는 성남시를 감사하고 난 뒤 지금까지 11년 넘게 성남시에 대한 정기 감사를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감사원 내에서도 “감사원이 감사를 안 해 대장동 비리를 키워놓고, 이제는 감사 청구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또 감사를 안 하겠다는 건 직무유기로 비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감사원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감사 청구 사항 중 수사·재판 중인 사안은 일일이 확인해 최대한 (감사에서) 배제하고 있다. 스카이72 감사도 그렇게 했다”며 “대장동 특혜 시비를 일으킨 주요 내용 대부분이 2015년 사업·주주 협약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시점을 기준으로 감사 청구 기간을 계산했다”고 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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