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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손현덕 칼럼] 보수(保守)의 5수(五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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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전국 단위 선거에서 4번을 내리 졌다. 민간기업이었다면 진즉 파산했을 것이다.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은 참 잘한다. 의문의 1패, 즉 2016년 총선 직후 백서를 냈다.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복기해서 또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어서야 했다"고. 원인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①불통 ②남 탓 ③자만 ④청년 메시지 부재 등등. 그러나 말로만 반성했다. 몸이 따르지 않았다.

억울해할지도 모른다. 사실 많은 걸 바꿨다. 당명부터 변경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미래통합당으로, 그러다가 국민의힘으로.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원칙과 가치보다는 유연함과 시대 편승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임기를 채운 당 대표는 한 명도 없다. 심지어 당 대표 숫자와 비상대책위원장의 숫자가 3명으로 같다. 보수 대통령 둘을 감옥으로 보낸 검찰총장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현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을 전략가로 모셔왔다. 이 정도면 탈태환골이다.

그런 절박감이라면 다섯 번째는 이길 만도 할 텐데 현재로선 오리무중이다. 현 정권의 실정과 상대 후보의 흠결이 그득한데도 그 정도다. 국민 모두가 그 이유를 안다. 겉만 바꿨지 속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덕지덕지 분칠만 했다. 17년 전 고(故) 박세일 선생이 당(당시는 한나라당)을 떠나면서 일갈한 대로다. 질서에 안주하는 기득권 보수. 개혁을 외면하는 퇴행적 보수. 자기희생을 거부하는 이기적 보수. 정당사의 기록을 갈아치운 지난 총선에서의 궤멸급 패배의 원인도 그 연장선상에 있으며 4년 전 백서 내용과 판박이였다.

참으로 놀랍게도 30대 젊은 당 대표를 선출하는 이변(?)이 있었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지역선거에서 승리를 맛봤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인 듯. 작은 승리에 취해 다시 불통하고, 아군끼리 총질하고, 선거 전부터 이권 챙기고, 영혼 없는 공약들이나 쏟아내고…. 안으로는 곪고 썩었는데 상처에 반창고만 붙인다고 되겠는가.

보수정당이 그렇게 비난하는 운동권그룹은 적어도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전국 단위 선거에서 세 번 연속 참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 갑자기 찾아온 2004년 반사적 이익은 2년 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치른 지방선거에서 일격을 맞은 데 이어 2007년 대선의 참패로 연결됐다. 이듬해 2008 총선에선 과반 의석이 81석으로 반 토막 났다. 위기감을 느낀 그들은 반성의 시간을 갖고 활로를 모색했다. 그들은 참패의 원인을 4가지로 요약했다. ①무능 ②공리공론 ③파벌싸움 ④싸가지. 백서에 기록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절실했다. 글로 반성하지 않고 몸으로 실천했다. 실력을 키웠고,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만들었다. 당시 친노그룹은 퇴장했다. 그 중심에 안희정이 있었다. 그리고 싸가지도 물리쳤다. 그렇게 무릎관절에 힘을 키운 진보세력들은 2년 뒤 지자체 선거에서 기적처럼 부활했다.

그들이 주로 만났던 곳은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홍미원이라는 한정식집. 이 모임을 주도한 인물이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의원이다. 그는 지금의 국민의힘에 점잖게 충고한다. "우리가 망한 경험이 있다. 좀 배우라"고. 시간이 없으니 속성 과외라도 받는 편이 나아 보인다.

지난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후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번에 후보가 대통령이 안되면 여기 있는 사람 중 딱 두 사람만 죽는다. 후보와 나. 나머지 분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음날이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보수정당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지난 4번의 패배에서 배운 게 없어 보인다. 그런 자세라면 5수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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