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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기업들, 스타트업 투자 팔 걷었다…대기업도, 기술 유니콘도 VC 설립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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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콘텐츠 ‘핑크퐁’과 ‘아기상어’로 유명한 더핑크퐁컴퍼니(전 스마트스터디)는 지난해 여름 450억원 규모의 ‘베이비샤크넥스트유니콘IP펀드’를 결성했다. VC(벤처캐피털) 자회사를 통해 애니메이션·게임 등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콘텐츠 산업은 제작 단계부터 구체적인 사업화 전략이 뒷받침돼야 IP(지식재산권)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 초기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미 아이 돌봄 애플리케이션(앱) 스타트업 ‘째깍악어’, 캐릭터 기업 ‘키키히어로즈’ 등에 투자했다.

대기업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스타트업 투자가 기업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중견기업은 물론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유니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VC를 만들어 다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내 대표 수제맥주 업체인 제주맥주도 ‘후배’ 스타트업 양성에 나섰다. 2015년 설립돼 지난해 5월 코스닥에 상장한 제주맥주는 벤처 투자 회사인 ‘카스피안캐피탈’을 세웠다. 제주맥주가 VC를 설립한 이유는 관련 스타트업과 전략적 시너지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사업 연관성이 있는 섹터인 ▲커머스 ▲콘텐츠 ▲ICT 분야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직방은 대규모 투자를 받아 국내 대표 부동산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기업이다. 직방은 2019년 말 프롭테크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전문 VC 브리즈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2020년 직방과 우미건설이 각각 100억원을 출자해 200억원 규모의 ‘프롭테크워터링펀드’를 운용하며 투자를 진행 중이다. 가구 물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플랫폼 ‘하우저’, 국내 최초 민간 태양광 발전 기업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BEP)’, 인테리어 가상현실(VR) 서비스 ‘큐픽스’, 공유주방 ‘고스트키친’ 등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도 ‘제2의 무신사’ 찾기에 나선 지 꽤 됐다. 2018년 설립한 무신사파트너스는 지난해 200억원 규모로 첫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했다. 한국투자증권, 현대카드가 출자자로 참여했다. 스마트 리테일·비대면 소비재 분야를 비롯해 핀테크(금융과 기술 융합) 등 무신사와 전략적 협력이 가능한 패션 분야 등에 주로 투자한다.

경진대회를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모바일 금융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미래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투자 유치금 10억원 규모의 스타트업 경진대회 ‘FOUND’를 개최하는 방식이다. 지난 12월 시작된 사전 신청에는 600여팀이 참여 의사를 밝히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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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그룹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지주사 CVC인 GS벤처스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투자에 나선다. ‘아기상어’로 유명한 더핑크퐁컴퍼니도 펀드를 구성해 스타트업 육성에 나섰다. (매경DB, 더핑크퐁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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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제2벤처 붐’ 평가

▷국내 스타트업 투자 11조원 최대

지난해는 ‘제2벤처 붐’이 불었던 해로 평가받는다.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 금액이 11조5000억원을 넘겼다. 역대 최대 규모로 10조원을 넘은 것도 처음이다. 스타트업 모임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이 11조5733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와 금융사뿐 아니라 기업까지 가세하며 판이 커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업이 스타트업 투자에 매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느 때보다도 성장동력 발굴에 갈망하고 있어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이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거 성공했던 비즈니스 모델이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기술과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소비자 취향이 급변하는 게 핵심 이유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사업화하는 일이 절실해졌고, 기업이 스타트업을 눈여겨보게 된 셈이다. 특히 유니콘으로 성장한 기업이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투자 대상 기업의 경쟁력과 보완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서다. 유니콘은 스타트업 시절 고난기를 겪었기에 어느 시점에서 자금이 필요하고, 또 어떤 경영 조언이 필요한지 잘 안다. 게다가 독립성을 폭넓게 지켜주며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과거 네이버, 카카오, 스마일게이트 등 인터넷·게임 업체가 성장한 이후 투자사를 설립해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투자와 함께 창업이 살아나고 뛰어난 스타트업이 탄생하는, 선순환 구조도 생겨났다. 정부와 금융 시장에서 벤처 펀드에 뭉칫돈을 넣고 기업이 투자를 이어가자 창업이 크게 늘어났다. 창업 지표인 신설 법인 수는 2020년 12만3305개를 기록하며, 20년 전인 2000년(6만1535개)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스타트업과 벤처 붐 관련 기업 종사자도 1년 사이 10% 이상 증가했다. 전체 기업 종사자 증가율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기업가치를 1조원 넘게 평가받는, ‘유니콘’ 기업 숫자도 불어났다. 2021년 ‘직방’, 블록체인 기반 핀테크 기업 ‘두나무’, 신선식품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 등이 새롭게 유니콘에 이름을 냈다. 기업가치 1조원을 돌파한 이력이 있는 기업은 2018년 말 13개사에서 2019년 말 19개사, 2020년 말 20개사, 2021년 24개사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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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CVC로 벤처 투자

▷GS가 첫발…LG·SK도 대기 중

이미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해왔던 대기업은 CVC(기업 주도형 벤처투자회사) 제도 도입으로 날개를 달 듯 보인다. 지금껏 국내 일반 지주회사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투자사인 CVC를 계열사로 둘 수 없었다. 기존 CVC는 지주회사가 없는 기업이 만들었거나 계열사가 별도로 세운 형태다. ▲삼성벤처투자 ▲포스코기술투자 ▲네이버 스프링캠프 ▲카카오벤처스 등이 지주회사 없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CVC다. 계열사를 별도로 세운 경우는 ▲롯데벤처스(호텔롯데) ▲코오롱인베스트먼트(코오롱차이나(HK) 컴퍼니)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씨앤아이레저산업) ▲시그나이트파트너스(신세계인터내셔날) 등이 있다.

가장 앞장선 곳은 GS그룹으로 최근 GS벤처스를 설립했다. GS벤처스는 지난해 12월 30일 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후 설립된 첫 번째 지주회사 내 CVC다. GS벤처스는 지주회사 GS가 자본금 100억원을 전액 출자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 형태다. 업계는 대기업 계열 CVC 등장으로 국내 벤처·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CVC가 미국 알파벳의 구글벤처스, 캐피탈G처럼 다양한 신산업 영역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GS벤처스는 ▲바이오 ▲기후 변화 대응 ▲자원 순환 ▲유통 ▲신에너지 등 5개 분야를 투자해 국내 스타트업 발굴에 나설 계획이다.

LG그룹 역시 국내 CVC 설립을 준비 중이다. LG그룹은 2018년 5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5개 계열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CVC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운영해왔으나, 지주사 ㈜LG 소유의 국내 CVC는 없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가 출자한 총 4억2500만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통합 운영 중이다. SK그룹은 국내에서는 첫 투자 주도형 지주사를 운영하며 호평받았다. 역시 지주사 아래 CVC를 설립해 수소와 바이오 등 신산업 스타트업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3호 (2022.01.19~2022.01.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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