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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상담센터…성범죄 가해자 변호 상품들 첨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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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폭력, 빈틈을 비추다 8회]

“디지털포렌식 자료 검증, 경찰 선의에 달려”

“심리상담센터는 가해자 스토리텔링 역할”

소극적인 수사 관행의 빈틈이 부른 결과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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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법무법인 ○○은 자체 디지털포렌식(복구)센터와 실력있는 성범죄 전담 변호사와 함께 하며, 수많은 성공사례를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성공사례를 확인하고 싶으시거나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면 부담 갖지 마시고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로펌은 홈페이지에서 정보통신공학 박사 출신 변호사가 운영하는 별도의 디지털포렌식센터를 두고 있다고 크게 홍보 중이다. 로펌은 ‘디지털포렌식 관련 성공사례’라면서 한 강간죄 사건을 예를 든다. 성관계 뒤 연락을 끊은 피의자를 피해자가 강간 혐의로 고소했으나, 피의자의 과거 휴대전화에서 삭제했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복원해 성관계 다음날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눈 것을 입증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애정 어린 대화’ 대화가 곧 성범죄가 없었다는 증거가 아닌데도 말이다. 또 이 디지털포렌식센터는 피해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피의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유포한 것을 발견해 피해자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도 적었다. ‘포렌식’이라는 만능열쇠로 혐의를 벗고 피해자를 역고소까지 할 수 있었다는 “성공사례”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계와 인식 수준이 높아지는 가운데, ‘가해자 변호 법률 상품’ 시장 역시 첨단화하고 있다. 포렌식 장비를 갖춘 가해자 변호 전문 로펌이 디지털 증거들을 직접 추출해 수사기관에 제출하고, 특정 심리상담소와 가해자를 연결해 법원에 제출할 범죄심리의견서의 작성을 돕는 식이다. ‘법률 상품들’로 무장한 변호인들이 가해자의 ‘요람(입건·수사)에서 무덤(선고)’까지 동행하는 셈이다. 여성계는 이런 상황에 수사기관·법원의 소극적인 대응까지 더해지면 성범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가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포렌식 자료 신빙성 확인, 경찰 ‘선의’에 달려”




피해자와 가해자 외에 제3자가 범행 당시 상황을 알기 어려운 성범죄의 특성상 휴대전화에 담긴 메시지와 사진 등은 정황을 드러내는 중요한 물증으로 취급받는다. ○○로펌과 같이 성범죄를 주요하게 다루는 로펌이 직접 디지털포렌식센터를 운영하거나, 로펌과 연계된 사설 포렌식 업체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에 성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포렌식으로 “자신이 범죄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자료나 알리바이를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제출해 효과적으로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로펌 홍보문구)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세일즈(영업) 포인트’다. 과거에는 반성문 제출·시민단체 기부 등으로 법원의 선처를 받아내는 게 ‘주요 전략’이었다면, 법원 판단이 보다 까다로워진 최근에는 경찰·검찰 단계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제출해 불송치·무혐의 결론에 이르는 게 ‘최우선 목표’가 된 것이다.

문제는 경찰 등 수사기관이 피해자나 가해자가 로펌 내 포렌식 센터나 사설 포렌식 업체 등에서 추출한 디지털 정보를 ‘엄밀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혜진 변호사는 “휴대전화 기종이나 상태에 따라서 포렌식의 복구율이 달라질 수 있다. 경찰이 피해자나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사설 포렌식 센터에 맡겨서 추출하도록 권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사설 포렌식 센터 중에는 신뢰하기 어려운 곳도 많다”고 했다. 실제로 성범죄 가해자 변호 전문 로펌이 운영하는 네이버의 유명 카페는 “주요 서비스”라며 서초동의 한 사설 포렌식 센터 홈페이지와 연결되는 배너를 내걸었다. 이 포렌식 센터는 해당 카페 회원이라면 10% 할인의 혜택을 주겠다고 홍보한다.

경찰이 사설 포렌식 센터에서 추출한 자료에 의존해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 변호사는 “피의자가 직접 사설기관에서 추출한 포렌식 자료가 믿을만한지, 본인에게 유리하게 취사선택한 흔적은 없는지 검증하는 것은 개별 경찰관의 노력과 선의에 달렸다. 경찰에서도 조작 정황이 뚜렷하지 않으면 웬만하면 (피의자가 제출한 자료를) 믿어주는 분위기”라고 했다. 가해자가 임의로 편집한 문자 메시지 등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신진희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는 “수사기관마다 원자료를 요구하거나, 필요한 자료만 뽑아서 내라거나, 휴대전화를 내라고 하는 등 편차가 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포렌식 자료를 제출하기 때문에 가해자 쪽 변호인이 원자료를 함부로 조작하거나 취사선택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결국 로펌이 포렌식 센터 운영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친분을 드러내는 문자는 결국 성범죄 발생 자체와는 무관한 여러 정황 중 하나일 뿐”이라며 “로펌이 의뢰인을 법망에서 빠져나가도록 마치 중요한 자료를 만들어주는 것처럼 포렌식 센터를 홍보하고 이를 상품으로 제시하는 것 자체가 성범죄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해자 ‘사연’ 만들어주는 심리상담센터


로펌이나 법률 사무소와 연계된 심리상담센터 또한 가해자 변호 시장의 ‘트렌드 상품’이다. 검색, 대형 온라인 카페(성범죄 관련 정보공유 커뮤니티)의 연계, 로펌을 통한 소개 등으로 접하기도 쉽다. 누구나 돈을 내면 본인에게 유리한 범죄심리의견서, 재범위험성 평가 감정서 등을 받을 수 있다.

심리상담센터는 내담자의 불우한 가정환경 등 과거력과 범행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와 ‘반성하고 있다’는 내용의 심리상담 결과 등을 포함한 범죄심리의견서를 작성해 준다. 센터들은 이를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에 제출하면 기소 여부 또는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실제로 ㄱ센터는 취재를 위해 내담자로 상담을 요청한 <한겨레>에 “우리의 목표는 내담자께서 선처를 받는 일”이라면서 “가장 좋은 건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 받는 것이고, 그게 안 되더라도 법원에서 감경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비용은 온라인 상담 4회에 88만원, 의견서는 약 40쪽 내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제출한 심리상담 소견서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도 가해자 변호 법률서비스 시장을 키우는 요소로 지적된다. 법원 홈페이지에서 ‘심리상담’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심리상담을 받았다는 점을 감경 사유로 든 판결문이 다수 발견된다. “피고인이 스스로 정신과 심리상담치료와 성인지 교육을 받으며 갱생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점”, “부모가 건전한 성의식 함양을 위해 피고인으로 하여금 정기적인 심리상담 치료를 받게 하고 있는 점” 등의 이유다. <한겨레>와의 접촉에서 ‘내담자의 선처가 목표’라 했던 ㄱ센터에서 “성인지 왜곡 심리상담 및 심리 치료를 받았다”는 사유로 피고인에게 선고유예를 선고한 경우도 있었다.

박수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은 “(심리상담센터 등이 하는 일은) 가해자의 스토리텔링을 해주는 것”이라며 “개인의 스토리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근본적 문제다. 재판부의 관행이 바뀐다면 이런 상품도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극적 수사 관행 속 ‘외주화’ 가속




가해자 변호 법률서비스가 나날이 발전하는 건 ‘소극적인 수사 관행의 빈틈’을 노린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포렌식 등 적극적인 수사를 꺼리는 수사 관행 속에서 ‘외주화된 수사’를 가해자 법률 시장이 맡게 됐다는 이야기다.

박수진 위원장은 “피의자가 방어권 차원에서 상품화한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서비스가 정보를 통제하고, 실체적 진실을 감춘다면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소극적인 수사 관행 속에서 가해자 전문 로펌이 상품화한 건 수사를 대신해주는 서비스다. 피의자는 자체적인 디지털 포렌식 등으로 증거를 취사선택해 낼 수 있고, 이 증거들은 수사기관의 송치·기소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이 이어진다면 피해자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재우 박고은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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