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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전염병 땐 긴급투입, 소 뿔에 받혀 트라우마…가축방역 노동자들이 첫 파업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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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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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위생방역 노동자들이 18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가진 전면파업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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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아프리카돼지열병·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 최전선에서 방역과 검사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노동자들이다. 특히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겨울철은 가축 전염병 특별방역 기간이다. 그러나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정규직이 아니라 공무직(무기계약직)이다. 소의 혈액을 채취하다 뿔에 받혀 다치고, 동물의 전염병이 감염되기도 하지만 20년 일한 노동자 월급이 3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가 18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0일부터 일주일간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2011년 노조가 설립된 이후 첫 파업이다. 이번 파업에는 시료를 채취하는 방역사, 도축되는 축산물을 검사하는 검사원,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전화 점검을 하는 예찰원 등 1200여명이 참여한다. 노조는 지난해 9월부터 사측과 임금 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핵심 쟁점은 임금 등 처우 개선과 과도한 업무 방지, 인력 충원이다. 노동자 A씨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양을 넘는 일을 시킨다”며 “전염병이 터졌을 때는 이해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닐 때도 긴급하게 조사를 하라는 지시가 자주 내려온다”고 했다. 이 노동자는 “오래된 축사가 많아 보호장구를 하더라도 다칠 위험에 노출돼있는데 내려오는 일이 많아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며 “최저임금 수준 급여를 받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낫겠다는 농담도 하는데, 오죽 답답했으면 파업을 하겠느냐”고 했다.

B씨는 소의 혈액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다른 소가 뿔로 들이받아 3개월 병원 치료를 받아야 되는 피해를 입었다. 소는 무게가 수백kg에서 1톤까지 나가는데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방역사에게도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지만 인력은 부족하고 업무는 지나치게 많다고 했다. 사고 이후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B씨는 “다른 회사 생활도 해봤지만 방역사 일은 노동 강도나 다칠 위험이 매우 높다”며 “안전이 확보돼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력 충원이 시급하고, 비정규직 문제가 꼭 해결돼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일하던 사람은 퇴사를 하고, 신규 인력은 제대로 뽑히지 않는 상황이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방역사 인원의 6.4%가 퇴사했다. 김필성 노조 지부장은 “가축 방역은 국가 재난과 관련돼있는 중요한 업무인데 노동의 가치가 허드렛일처럼 취급되고 있다”며 “큰 동물을 다루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에 숙련도와 경험이 요구되는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고, 새로운 인력은 충원되지 않아 위험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노조는 인건비 잔여예산 13억여원을 처우 개선에 사용하자고 주장했지만 사측과 합의가 되지 않았다.

노조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정원 1274명 중 정규직은 55명 뿐이고, 최일선 가축 방역 현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1219명이 무기계약직인 기형적인 구조”라며 “매년 겨울철이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업무량이 폭증하지만 인력은 단 한 명도 충원되지 않고 모든 업무를 기존 인력이 떠안고 있다”고 했다. 노조는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신년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가축방역 시스템화가 가장 큰 성과라고 자화자찬했다”며 “K-가축방역 성공신화의 이면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참지 못하고 파업에 돌입하는 가축위생방역 노동자 문제를 청와대가 나서서 해결하기 바란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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