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이슈 '오징어 게임' 전세계 돌풍

‘깐부’ 벗고 냉철한 프로이트로…오영수 무대 복귀작, 연극 ‘라스트 세션’ [리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노학자 프로이트와 작가 루이스의 만남, 신랄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말의 전투’


경향신문

배우 오영수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흥행을 뒤로 한 채 다시 찾은 연극 무대는 20세기 대표적인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의 만남과 논쟁을 다룬 연극 <라스트 세션>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날카로우면서도 위트 있는 지성, 프로이트를 연기한다. 파크컴퍼니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는 도발적인 토론을 즐기는 거요, 지금 우리처럼.”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3일 오전, 런던. 한 노학자의 서재에서 총성 없는 말의 전투가 벌어진다. 날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동시에 한 치의 양보 없는 토론의 주제는 바로 ‘신의 존재’다.

무대는 런던으로 망명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서재다. 라디오에서 전쟁을 알리는 총리의 대국민 담화가 흘러나오는 사이,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은 젊은 학자 C S 루이스가 이곳에 찾아온다. 자신의 소설에서 프로이트를 조롱했던 루이스는 프로이트가 자신을 비난하기 위해 불렀다고 생각하지만, 프로이트는 루이스의 소설은 읽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다. 다만 궁금할 뿐이다. “선생 같은 똑똑한 사람이, 한때는 내 신념에 동조했던 사람이, 왜 갑자기 진실을 버리고 간교한 거짓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난 그걸 알고 싶소.”

연극 <라스트 세션>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1856~1939)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작가 루이스(1898~1963)의 강렬한 만남을 그린 2인극이다. 프로이트는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라고 주장한 20세기 대표적 무신론자다. 반면 루이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기독교 변증을 펼친 <순전한 기독교>를 펴내는 등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극적인 전향을 한 인물이다. 그런 둘이 만나 토론을 벌인다면? 실제로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연극은 죽음을 3주 앞둔 83세의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41세의 유신론자 루이스가 하루 동안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가정 하에 펼쳐진다. 미국의 극작가 마크 저메인이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으로 2009년 초연했고, 국내에선 2020년 관객과 처음 만났다.

경향신문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신구, 이상윤, 오영수, 전박찬. 파크컴퍼니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믿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거야말로, 오히려 신의 존재에 대한 더욱 강력한 증거죠.”(루이스) “난 유니콘의 존재를 부인하는데, 그럼 유니콘이 존재하는 건가?”(프로이트) 두 학자는 서로의 논리적 허점을 찌르며 신랄하고도 재치 있는 논쟁을 이어간다. 전쟁과 폭격의 공포 속,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토론은 고통과 악, 사랑과 성욕, 삶과 죽음 등의 주제로 뻗어나간다. 지적인 공방과 논리로 가득 찬 연극이지만, 불꽃 튀는 설전 사이사이 튀어나오는 유머가 완급조절을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 오일남을 연기해 최근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가 전작의 초국적 흥행을 뒤로 한 채 다시 찾은 연극 무대다. 지난 10일 수상 직후에도 인터뷰를 고사한 채 연습에 몰두했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인기에) 잠시 자제력을 잃었는데 이 작품을 만나 다시 중심을 잡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배우 신구와 함께 냉철하면서도 위트 있는 지성 프로이트를 연기한다. 오경택 연출은 “신구가 완고하고 연륜이 느껴지는 프로이트라면, 오영수는 날카롭고 여유 있는 프로이트”라고 표현했다. 배우 이상윤과 전박찬이 루이스를 맡아 두 노배우와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

경향신문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를 연기하는 배우 전박찬(왼쪽)과 프로이트로 분한 배우 신구. 파크컴퍼니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촘촘하게 짜인 대본, 배우들의 팽팽한 에너지가 90분의 러닝타임을 끌고가는 연극이다. 모든 철학이 그렇듯, 분명한 결론과 답을 내기보다 등장인물들의 진리에 대한 탐구, 치열한 논박이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극의 말미, 루이스는 프로이트의 집을 떠나며 “시대를 초월한 미스터리를 하루 아침에 풀어보겠다고 생각한 게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고 생각을 접는 게 더 미친 짓이지.” 공연은 서울 대학로 티오엠(TOM) 1관에서 3월6일까지.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 RPG 게임으로 대선 후보를 고른다고?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