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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남녀의 조신한 대화…‘솔로지옥’은 새로운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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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넷플릭스 ‘솔로지옥’ 인기 이유

전세계 넷플릭스 시청률 10위권

끊임없이 육체적 매력 보여주지만

넘어서는 안될 ‘유교의 선’은 지켜

서구적 예능 포맷+한국인 출연자

육체보다 정신적 감정 교류에 집중

해외서도 “친절, 달콤, 정직” 호평


한겨레

한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데이팅 예능 <솔로지옥>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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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투 핫>. 이 말을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아무리 넷플릭스라고는 해도 한국판 <투 핫>이라고? 넷플릭스가 2020년도에 내놓은 미국 데이팅 예능 <투 핫>은 노골적인 프로그램이다. 하루 세끼 닭가슴살만 먹고 하루 3시간 체육관에 처박혀서 복근을 만들 것 같은 남녀들을 작은 섬으로 몰아넣는다. 조건이 하나 있다. 우승을 위해서는 섹스를 하면 안 된다. 출연자들은 이걸 듣는 순간 말도 안 된다는 듯 신음 소리를 내뱉는다. 역시 미국이다. 아무리 한국이 성적으로 개방된 국가라고 해도 이런 예능에 출연할 출연자는 없다. 이런 예능을 받아들일 시청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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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데이팅 예능 <솔로지옥>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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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지옥>이 공개되자 나는 역시 유교국에서 <투 핫>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며 안도(?)했다. 이건 생각만큼 급진적인 예능은 아니다. 여전히 하루 세끼 닭가슴살만 먹고 하루 3시간 체육관에 처박혀 복근을 만들 것 같은 남녀들로 가득하지만 섹스는 없다. 키스도 없다. ‘핫’바디를 가진 남녀들은 이상할 정도로 조신하게 자리에 앉아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다. 에스비에스(SBS)플러스에서 <짝>의 포맷을 아주 약간 손봐서 만든 <나는 솔로>와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은 없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솔로>와 <솔로지옥>의 차이점은 오로지 출연자들의 육체적 매력뿐이다. 아니다. <나는 솔로> 출연진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두 예능이 노리는 부분이 달랐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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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데이팅 예능 <솔로지옥>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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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데이팅 예능은 <짝>의 종영 이후로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지난 몇년 동안 큰 성공을 거둔 데이팅 예능은 카카오티브이(TV)의 <체인지 데이즈>, 티빙의 <환승연애>였다. 이 프로그램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남녀를 한정된 장소에 집어넣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지켜보는 전통적인 데이팅 예능과는 달랐다. <체인지 데이즈>는 이별을 고민 중인 커플들이 다른 이성과 데이트를 하며 옛 연인과 새로운 사람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환승연애>는 이미 이별한 커플들이 서로가 전 연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다른 이성들과 차례로 데이트를 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이건 너무나도 한국적인 변용이다. 해외 데이팅 예능에서 중요한 건 출연자들의 매력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성적인 매력도 포함된다. <체인지 데이즈>와 <환승연애>는 출연자들을 ‘이별을 고민 중인 커플’이나 ‘이미 이별한 커플’로 제한하며 오래된 예능의 포맷을 살짝 뒤튼다. 한국 데이팅 예능에서 중요한 건 출연자들의 성적 매력이 아니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맺는 ‘관계’다. <체인지 데이즈>와 <환승연애>는 이미 모종의 관계가 있던 출연자들이 새로운 사람과 데이트를 하면서 겪는 내적 갈등에 더 집중한다. 그것이 유교국 한국에서 데이팅 프로그램이 내세울 수 있는 최선의 무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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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데이팅 예능 <솔로지옥>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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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지옥>은 거기서 벗어나려 애쓴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출연자들의 육체적 매력을 보여주려 용을 쓴다. 남성 출연자들이 수영복 위에 숄을 걸치고 지긋이 바라보는 여성들 앞에서 닭가슴살과 프로틴으로 만든 몸을 뽐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솔로지옥>의 시각적 클라이맥스 혹은 웃음 포인트 중 하나다. 암컷을 꾀려 화려한 깃털을 흔들며 춤을 추는 극락조 무리를 떠올려보시라. 몇몇 장면에서는 나도 비명을 질렀다. 여성 출연자가 관심 있던 남성 출연자에게 그냥 같은 침대에서 자라며 “설레서 잠이 안 올 것 같아?”라고 말하는 순간은 한국 데이팅 예능의 새로운 역사였다. 나는 사실 거기서 더 나아가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 기립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솔로지옥>의 성적인 긴장감은 “옆에서 자” 이상을 치고 올라가지는 않는다. 만든 사람들도 출연한 사람들도 이게 결국 한국 예능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넘어서는 안 되는 어떤 선이 존재한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솔로지옥>은 ‘핫한 사람들’(이 시리즈를 만든 피디들이 강조한 단어다!)의 <나는 솔로>에 가깝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척하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누가 누구를 좋아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하는지, 팽팽하게 당겨져서 파르르 떨리는 출연자들의 감정이야말로 <솔로지옥>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결국 제작진은 서구적인 데이팅 예능의 포맷에 한국인들을 집어넣음으로써 여전히 아주 한국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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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데이팅 예능 <솔로지옥>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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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솔로지옥>은 전세계 넷플릭스 시청률 10위권을 차지할 만큼 국제적인 성공작이 됐는가? 한국 시청자들은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에서 본 적 없는 ‘핫’한 데이팅 예능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 시청자들이 아이엠디비(imdb) 사이트에 남긴 리뷰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시청자는 “서구 데이팅 예능은 시끄럽고 선정적이다. 그게 재미있는 동시에 오글거리는 포인트다. <솔로지옥>은 문화적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별로 벌어지는 일이 없다. 당신이 정신 나간 예능을 바란다면 이건 그런 게 아니다. 이 프로는 그저 아름답다”고 썼다. 다른 시청자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 문화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부드럽고 친절하고 달콤하고 정직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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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데이팅 예능 <솔로지옥>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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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지옥>은 새로운 <오징어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은 서구적인 장르를 한국적으로 변용해 국제적인 성공을 거뒀다. 한국 시청자들이 지적했던 ‘신파’는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문화적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졌다. 구슬치기 에피소드를 보며 오열하는 해외 유튜버들의 동영상을 당신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솔로지옥>도 마찬가지다. 해외 데이팅 예능과 같지만 다르다. 출연자들이 얼마나 핫한 페이스와 핫한 바디를 가졌느냐에 상관없이 한국 데이팅 예능은 육체보다 감정의 교류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더 집중한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유교걸 유교보이들의 예능이다. 조신하다. 그 조신함이 <솔로지옥>을 ‘케이(K)-데이팅 예능’의 <오징어 게임>으로 만들고 있다는 건 정말이지 재미있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넷플릭스에 다음 시즌 홍보문구를 이렇게 바꾸는 것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부드럽고 친절하고 달콤하고 정직한 ‘케이-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도훈 작가 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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