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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뉴스룸에서] ‘의료 최전방’ 응급실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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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119 대원들이 응급 환자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이송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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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단연 응급실이다. 코로나19 탓에 응급 환자가 더 늘어나 요즘 응급실은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실이 포화 상태여서 응급실 의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119로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오면 1시간 넘게 입실조차 못하고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40여 곳을 전전하기도 했다”며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처럼 응급실 포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서둘러 대책이 나왔다. 지난 2일 국회가 응급실의 응급 환자 수용을 의무화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의료계는 “병상과 의료진 부족으로 응급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데 우리에게 책임 지우려는 미봉책”이라고 반발했다. 법 개정안에 병원이 일부러 응급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있다는 선입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응급실은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돼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특히 서울 소재 20여 곳의 대형 대학병원 응급실은 콩나물 시루나 다름없다. 생사를 오가는 중증 환자뿐만 아니라 단순 염좌나 자상만 입어도 무조건 대형 종합병원 응급실로 몰리기 때문이다.

응급의학계는 이를 해결하려면 경증 응급 환자를 전문 치료하는 ‘응급클리닉(urgent clinic)’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경증 응급 환자를 전문 치료하는 ‘동네 편의점’ 같은 응급클리닉이 9,000여 곳이나 된다. 응급 환자를 분산하지 않고는 응급실 과밀 문제 해결은 난망하다. 다행히 일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사태 심각성을 깨닫고 팔을 걷어붙였고, 올해 안에 서울에 응급클리닉을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힘겹게 내딛은 첫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보건당국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다.

턱없이 부족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늘리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의사들에게 보상 없이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슈퍼맨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는 영화에서나 존재한다. 응급의학과가 힘들고 보상이 적은 데다 소송까지 잦은 탓에 ‘기피 진료과’가 된 지 오래다. 지원하지 않는다고 사명감 운운할 순 없다. 2022년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정원(179명)이 15%(28명)나 미달했다. 도중에 포기하고 전과하는 경우도 10%나 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중소 도시에 주로 세워진 237개 지역응급의료기관 응급실 중 100여 곳이 응급의학 전문의가 없이 응급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이런 응급 의학 취약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도서 벽지 병원 응급실을 돌아가면서 진료하는 ‘순환 근무제’를 합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만하다.

예컨대 특정 섬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5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2개월씩 번갈아 근무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70%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이런 방식으로 근무할 정도다. 이 밖에 밤낮이 따로 없는 환자를 치료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담을 줄여 주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응급실은 ‘의료 최전방’으로 불린다. 그 나라의 의료체계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우리 응급실 의료체계 허점이 드러났지만 이번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아 응급의료체계를 선진화하길 바란다.
한국일보

권대익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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