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돌아온 심상정 “정년연장·연금개혁 등 진보의 성역, 공론화 나서겠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17일 “이번 대선에서 저와 정의당은 국민의 재신임을 구하겠다. 저의 마지막 소임을 끝까지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선거운동 일정을 중단하고 숙고에 들어간 지 닷새 만에 대선 레이스에 공식 복귀한 것이다. 심 후보는 “더 겸손하게 , 더 당당하게 임하겠다”며 의지를 다잡았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 구의역과 강남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재개했다.

심 후보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장에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타났다. 카메라 앞에 선 그의 배경으로 흰 천 위에 노란색의 ‘심상정’ 석 자가 붙었고 그 위에는 ‘정의당과 심상정’의 ‘뼈를 때리는 말’들이 겹쳐졌다. 선생질, 킹노잼, 민주당 2중대, 노회찬 없는 정의당, 현장에 없다… 비장한 표정으로 그 앞에 선 심 후보는 “제가 선거운동 일정을 중단한 것은 단지 지지율 때문은 아니었다”며 “밀려드는 일정을 잠시 중단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또 어디서부터 변화해야 하는지 침묵 속에서 깊이 성찰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남 탓하지 않겠다. 거대양당의 횡포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당이 작아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겠다”며 “진정으로 억울한 분들은 불평등의 계곡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조차 힘겨운 분들”이라고 했다.

심 후보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찬성한 것에 대해 “뼈아픈 저의 오판”이라며 “겸허하게 인정한다”고 했다. 이어 “저는 사회적 약자들 곁에서 함께 우는 것을 넘어 더 큰 힘으로 우리 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그 과정에서 진보정치의 가치와 원칙이 크게 흔들렸다”고 했다. 정의당은 ‘조국 사태’ 당시 장관 임명에 찬성했지만 ‘민주당 2중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당시 심 후보와 정의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협력’이었다며 지지층을 설득했지만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하면서 정의당은 의석 확대에도 실패했다. 심 후보의 이날 반성은, 정의당 위기의 출발점이었던 ‘조국 장관 임명 찬성’을 거듭 사과하면서 일신을 다짐한 것이다. 심 후보는 “진보정치를 성원하고 또 진보정치가 성장하길 바랐던 많은 분이 실망했는데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이분들의 마음이, 아직 그 믿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선거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치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시했다. 심 후보는 “상황이 어렵다고 남 탓하지 않겠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키고, 어렵더라도 피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노동·여성·기후위기를 “시대정신”으로 규정하며 “이번 대선에서 지워진 이름들을 심상정의 마이크로 더 크게 그 목소리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또 정년연장, 연금개혁 등을 언급하며 “진보의 성역처럼 금기시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공론화를 시작하겠다”며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겠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정규직 노조나 중장년층 노동자들은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반면 신규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청년 세대와의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이런 문제들은 진보진영에서 금기시했던 의제다. 이 때문에 대안을 제시해야 할 문제마저 정의당이 공론화를 꺼리면서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나 정의당을 선택해야 할 이유를 잃었다는 자기반성이다. 정의당 핵심 관계자는 “정년연장, 연금개혁 등은 당 안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였지만 당의 입장이 불분명해 노조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주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며 “단순한 지지율 문제를 넘어, 진보가 금기시했던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적극 대화하고 대안을 찾아 정의당의 가치와 원칙을 더 선명하게 세우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광주 신축 주상복합아파트 붕괴 현장에 이어 이날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사고희생자를 조문한 심 후보는 기자회견 뒤 지하철을 이용해 시민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며 약자들의 죽음이 발생했던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과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국민이 정의당이라는 진보정당에 거는 기대가 분명히 있었지만 조국 전 장관 사태 때 신뢰를 잃은 것이 결정적이었다”며 “진보적 의제 구분이 없어지는 만큼 진보가 갖는 특수성을 과도하게 의식하기보다 양당 정치를 흉내 내지 말고 승자 독식 구도에서 국민이 의지할 길을 터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