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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부 ‘무리한 빅딜’ 책임론…‘대우조선 인수 불발’ 쟁점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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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인수 불발’ 쟁점 5가지

‘EU 불허’ 예견된 일이었나

빅3 ‘수주 출혈경쟁’ 재연될까

대우조선해양 독자생존 가능성?

정부 “민간 재매각 불가피”


한겨레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대우조선해양 누리집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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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게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한 정부와 산업은행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참여연대는 지난 14일 이런 논평을 냈다. 유럽연합(EU)이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불허한다고 발표한 직후다. 정부가 추진해온 조선업 ‘빅딜’(대기업 구조조정)이 없던 일이 되며 여러 평가와 전망, 우려 등이 잇따른다. 이 중 꼭 짚어져야 할 것으로 지목되는 5가지를 꼽아 살펴봤다.

①‘무리한’ 추진이었나


먼저 정부와 산업은행 ‘책임론’이 거론된다. 참여연대와 금속노조 입장이 대표적이다. 금속노조 쪽은 지난 14일 내놓은 성명서에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불발은 필연”이라며 “누가 봐도 독점이 명백한 상황을 아니라고 우기며 유럽연합이 요구한 대책조차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이 두 회사 결합을 반대한 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시장을 한 기업이 독과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발표 당시부터 제기됐다. 선박을 발주하는 소비자인 대형 해운사가 유럽에 주로 모여 있고, 액화천연가스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는 나라가 유럽에 모여 있어서다. ‘처음부터 안 될 일을 강행했다’는 게 책임론의 핵심이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쪽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하다. “인수 발표 당시에도 유럽연합의 반대가 우려되긴 했으나 감수할 리스크(위험)라고 보고 최대한 설득하겠다고 했다. 기업 결합이 무조건 승인될 거라고 보고 추진한 게 아니다”는 거다.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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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수주 출혈경쟁 다시 벌어지나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를 2개로 합친다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은 업계의 출혈 경쟁을 막자는 취지였다. 이 계획이 수포가 된 만큼 다시 저가 수주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걱정이 나온다.

시장에선 이럴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한영수 삼성증권 팀장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를 발표했던 2019년 초는 일감 부족으로 인한 조선사들 간 선가 경쟁이 존재했던 시기”라며 “현재는 조선사들이 필요한 일감을 미리 확보했고 선가 인상도 확인한 만큼 가격 경쟁을 유발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짚었다.

국내 조선 3사는 전방 산업인 해운업 호황과 선박 발주 증가에 힘입어 이미 2년 치 넘는 일감을 각각 쟁여놓고 있다. 수주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2019년과는 사정이 확연히 다르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 리서치’ 자료를 보면, 세계 시장의 신조 선가 지수(새로 건조한 선박 가격을 지수로 환산한 것)는 지난해 12월 154포인트로, 2009년 5월(157포인트) 이후 12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선사마다 배 만드는 작업장(독, Dock)이 꽉 들어차며 공급자(조선사)가 우위에 선 시장이 조성됐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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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현대중공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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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대우조선 홀로서기 가능한가


민영화가 무산된 대우조선해양의 독자 생존 가능성 여부도 주요 관심사다. 정부의 추가 지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결론을 말하면 ‘당장은 큰 문제 없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홀로서기 하기엔 기초 체력이 약하다는 의미다.

대우조선이 지난해 1∼9월 선박 건조 등을 통해 실제로 벌어들인 현금(영업활동현금흐름)은 2년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수주 호황 덕분에 발주처로부터 미리 받은 선수금이 느는 등 회사에 돈이 돌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운용비를 쓰고 남는 빚 상환 여력은 크지 않다. 대우조선해양은 순차입금만도 9천억원을 넘는다. 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우조선해양은 당장 존폐 위기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향후 업황이 나빠지면 다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원 가능성이 사라진 데다, 국책은행을 통해 차입한 2조원대 부채를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하는 등 겉으로 드러난 재무 지표보다 사정이 더 안 좋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나이스신용평가는 “대우조선의 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④대우조선 재매각 가능할까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의 근본적인 정상화를 위해선 민간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며 재매각 추진을 시사했다. 현재 인수 후보로 꼽히는 건 한화, 포스코, 효성그룹 등이다. 한화와 포스코는 2008년 대우조선 인수전에 참여한 전례가 있다. 방산(한화), 선박 제조용 철판 생산(포스코) 등 인수 뒤 시너지도 존재한다. 효성 쪽도 중공업 계열사를 둔 만큼 연관성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3사 모두 “대우조선 인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친환경 수소, 우주 산업, 전기차 배터리 등 그룹이 점찍은 기존 신사업에 집중해 투자 중인 만큼 몸집 큰 대우조선 인수에 다시 나설 유인이 낮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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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잠수함. 대우조선해양 누리집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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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현대중공업은 어디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지 못한 현대중공업그룹의 이해관계는 어떨까. 재무 상황만 놓고 보면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당초 현대중공업 쪽은 대우조선 인수 뒤 최대 2조5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인수 무산에 따라 그룹의 자금 활용 여력이 커진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업 중간 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이 현재 보유한 현금과 금융 자산은 약 1조5천억원에 이른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물류에서 큰 돈을 번 해운사들이 시장의 진입 장벽을 높이기 위해 친환경 선박 규제 강화 등에 나서며 조선사도 에코쉽(친환경 선박), 스마트쉽(지능형 선박) 분야의 원천 기술 확보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룹에 쌓인 돈을 신사업 투자에 대신 쓸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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