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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김유찬의 세금과 사회] 경제위기와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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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경영학과 교수,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이투데이

금융위기 이후 십여 년 만에 세계는 코로나 위기를 경험하고 있고, 오래전에 시작하여 진행형인 기후위기는 과연 극복이 가능한지, 얼마나 우리에게 희생과 자원 투입을 요구할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인류 최대의 위기이다. 위기는 일상화되고 그 극복은 사람들에게 사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경제의 운영 방식에 대하여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시장경제의 가르침은 개인적 주체를 강조하지만, 개인은 태생부터 공동체 속으로 던져진 존재이다.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이웃에 의존되어 있고, 그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제약적인 성격의 것이다. 간과되었던 이러한 속성이 위기의 극복 과정에서 부각되고 있다. 전염병이나 기후변화에 개인적 선호에 따른 대응은 작동하기 어렵고 공동체 속에서 공조된 대응만이 해법이다. 그리고 공조의 규칙은 정치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경제위기에서 부동산 시장의 위기로 층계를 내려오더라도 시장의 실패에 대한 정부의 개입 필요성은 명확하다. 부동산은 토지의 제약성으로 인하여 공급이 비탄력적인 재화이다. 이러한 부동산 시장에 경제위기로 인하여 유동성이 무제한으로 풀렸다. 정책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어 있다. 토지의 제약성이 우리에 비하여 낮은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부동산 가격은 최근 수년간 크게 올랐다.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의 개입으로 인하여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가격 상승이 야기되었다는 주장은 시장의 작동원리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 얘기다.

물론 정책이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하느냐가 중요하다. 적절한 부동산 정책이 대출 규제, 조세를 통한 투자수익의 환수, 분양정책의 영역에서 선제적으로, 그리고 일관적으로 추진되었다면 부동산 시장의 가격 상승은 최근 수년간 우리가 경험한 현실만큼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단계 더 일상으로 내려오자. 전염병과 기후위기, 그리고 부동산 위기가 양극화를 심화시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심각한 소득 및 자산 배분의 쏠림현상을 위기 이전부터 목도하고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수익성에 집중하면서 고용을 줄고 근로자의 비정규직화는 심화하였다. 국민소득에서 근로소득의 비중은 줄고 기업이윤의 비중은 늘어갔다. 이 추세가 오래 계속되면서 분배의 위기가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중요한 장애 요인임을 사람들은 알아차리게 되었다.

성장과 분배가 상충적인 관계에 있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경제학자 피케티가 잘 지적해 주었다. 시장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경제활동의 가치에 대하여 시장으로부터 낮게 평가받는 이들도 복지제도를 통하여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을 미래에 경제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으로 육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정도의 복지는 시장경제 유지의 필수적 요소이다. 보수 정권에서 복지제도가 도입되거나 확대된 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여러 나라의 역사가 말해 준다.

위기가 시장경제체제 자체에 연유하느냐 혹은 외부적인 문제이냐는 답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그 극복을 위하여 재정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것은 오히려 명확하다. 지난 세기 80년대와 90년대의 경제학계의 주류적 사고는 재정정책이 국내총생산(GDP)과 고용의 증대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다. 거시경제정책의 수단으로서 통화정책은 경기부양 수단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오히려 자산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정적인 효과만 노출했다. 코로나 경제위기에서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율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했다. 재정건전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경제가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며, 재정건전성은 그 결과로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제위기에서 재정 지출이 늘어나면 늘어나는 지출 규모의 일정 부분은 세금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이 우리는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현재의 낮은 수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중간 수준으로 높이려는 단계에 있으니 조세부담률의 점진적 증가는 피할 수 없다.

대선 후보들이 이러한 시대적 과제와 필요성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비정상이며, 선거 과정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세금을 늘릴 것인지 공약으로 제시하고 심판받아야 한다. 보수의 후보는 세금을 줄여준다고 하고 진보의 후보는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형편없는 포퓰리스트들이라고 비난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해서는 당면한 위기를 돌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금이 앞으로 한국 사회 최고의 갈등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앞으로 세금을 둘러싼 사생결단의 정치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공감하면서 나는 이 상황을 다른 말로 표현하고자 한다. 때가 된 것이다. 이제 세금에 대하여 정직하게 말하는 정치인이 유권자들에게 높게 평가받을 때가 온 것이다.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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