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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직무를 유기한 경찰은 단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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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김보은 김진관
한국일보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여성단체 회원들의 국회 앞 행진 시위.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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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17일 새벽, 21세 대학생 김보은 김진관이 청주지검 충주지청 53세 공무원 김영오를 살해했다.

어머니와 재혼한 김영오는 의붓딸 김보은을 7세 무렵부터 상습적으로 강간했고, 심지어 수사 중 압수한 포르노테이프를 아내와 딸에게 보여주며 변태적 행위를 강요하기도 했다. 거부하면 폭행이 뒤따랐고, 이혼을 요구하면 식칼을 들고 살해 협박을 일삼았다. 모녀의 가정폭력 신고로 더러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지만, 지청 총무과장인 김영오의 위세에 모두 꼬리 내리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모녀는 출구 없는 절망의 감옥살이 같았다고 했다.

김보은이 충남 천안의 한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뒤로도 김영오는 아내(어머니)를 볼모로 김보은을 호출하기 일쑤였다. 급기야 김보은은 같은 대학 동갑내기 남자친구 김진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김진관은 김영오를 찾아가 더 이상 김보은을 괴롭히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김영오는 그 상황에서도 김진관을 조롱하고 위협했다.

수원지청서 충주지청으로 전보돼 혼자 생활하던 김영오는 김보은과 술을 마신 뒤 만취해 잠든 상태였다. 김보은과 함께 준비한 식칼과 테이프를 들고 찾아간 김진관은 김영오를 묶어 두고 마지막 담판을 벌여 볼 계획이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영오는 '가만 안 둔다'고 '다 잡아넣겠다'고 소리치며 저항했다. 김진관은 그를 찔렀다.

강도살인으로 위장하려 했던 둘의 범죄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고, 범행 동기와 경위 등 모든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여성단체를 비롯한 각계가 둘의 구명운동과 가정폭력, 성폭력 규탄시위를 벌였다.

직무를 유기한 경찰은 누구도 단죄되지 않았지만, 김진관 김보은은 1992년 1심에서 각각 징역 7년과 4년을, 2심에서 5년과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김보은은 1993년 대통령 특사로 사면·복권되었고, 김진관은 형 절반을 감형받아 1995년 출소했다. 1993년 12월 성폭력특별법이,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됐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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