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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리차드3세'로 돌아온 황정민…고전이 전하는 '악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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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초연 이어 4년 만의 재연 타이틀 롤
원 캐스트 배우진, 탄탄한 내공 자랑
'악'의 근원에 대한 질문…고전극 대사 매력 물씬
한국일보

연극 '리차드3세'에서 등이 굽은 리차드를 연기하는 황정민이 그의 권력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대사를 하고 있다. 샘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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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에 나선 배우를 보며 소름이 돋는다. 굽어 있던 등과 절뚝거리던 다리를 서서히 곧게 펴며 서너 발걸음을 걷는 동안 리차드 3세가 황정민으로 돌아왔다. 100분간 들끓는 권력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질주하던 악인에 빠져 있던 관객도 그 순간에야 현실로 돌아온다. '그를 가엽게 여겨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마음속에 안은 채다.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리차드3세'에서 배우 황정민은 한 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관객을 극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 4년 전인 2018년 초연 당시보다 농익은 리차드를 보여줬다는 평이다. 서재형 연출·한아름 작가가 합심해 셰익스피어의 '리차드3세'를 각색한 이 작품은 당시에도 98% 예매율을 보이면서 호평을 받았다. 황정민의 10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도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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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차드3세'에서 황정민(가운데)이 주인공 리차드가 온갖 권모술수를 다 쓴 끝에 왕좌에 오르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샘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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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차드3세' 무대에 오른 건 무엇보다 작품의 매력이 커서였다. 황정민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로서 시적 표현이 많은 이 작품의 대사들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며 "영화 등 다른 매체 연기와 다른, 연극에서만 할 수 있는 특징적인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고전의 힘을 관객은 물론 연극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악행은 내가 저지르고 통탄할 책임은 남들에게 미루기 위한 손쉬운 방법'을 쫓는 리차드가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연출 측면에서 초연과 달라진 점도 있다. 서재형 연출은 "초연 당시 사회는 왕관, 꿈을 위해 모두가 질주하던 시대였다"면서 "내가 잘못된 것인지, 사회가 그렇게 나를 내몬 것인지를 고민하게 됐고 이런 관점에서 극을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전 세계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질주하던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숨고르기 시간이 됐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질주하는 사회를 구현한) 일부 장면은 자르고, 또 다른 장면은 보강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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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차드3세'에서 병세가 악화한 에드워드 역의 배우 윤서현(가운데)이 주변인들에게 후일을 당부하는 장면. 샘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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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13명 전원이 원 캐스트로, 높은 집중력을 보여줬다. 이들이 한 무대에서 각기 다른 자신의 욕망과 심정을 분출하는 에드워드 4세 사망 장면은 배우들 간의 정교한 합을 보여줬다. 능청스럽고 익살스럽기까지 한 황정민의 연기는 긴장감이 돌다가도 이내 풀어지게 했다. 그가 왕으로 추대받는 장면은 인물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 분명한데도 콩트와 같았다. "유머를 잘 써서 관객과 (리차드가) 친밀감이 커지면 극의 마지막이 빛날 거라고 생각했다"는 서 연출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극은 불편한 신체를 갖고 태어난 데 강한 콤플렉스를 가진 리차드의 인생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이 악인을 비난만 하고 돌아설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악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가렛 왕비의 대사를 통해 뒤틀린 몸만큼 꼬여 버린 내면을 갖게 된 리차드가, 우리의 책임은 아니냐는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개인의 결핍이 악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외면하고 모른 체해 온 시간은 없느냐고. "그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는가, 그대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는가." 공연은 2월 13일까지.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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