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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씁쓸한 ‘원조 국립 악단’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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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5년 창단 30주년 당시 코리안 심포니. /코리안 심포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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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때아닌 ‘원조 논쟁’이 불거졌다. 논쟁의 주역이자 대상인 두 악단은 KBS교향악단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다. 두 악단이 차지하고자 하는 왕좌는 다름 아닌 ‘국립교향악단(국향)’이다.

최근 코리안 심포니가 악단 명칭을 ‘국향’ ‘국립 심포니’ 등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이 악단은 2001년 예술의전당 상주 단체로 입주한 뒤 사실상 ‘국립’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명칭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악단 예산(77억원) 가운데 74%(57억원)를 국비에서 지원받았다.

하지만 KBS교향악단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인 KBS교향악단 지회는 지난 7일 성명에서 “특정 악단을 염두로 추진 중인 명칭 변경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사 측인 KBS교향악단도 12일 “국립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국립의 무게와 국격에 걸맞은 실력과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정 현안에 대해 노사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음악계에서는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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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국립교향악단 초대 감독에 취임한 지휘자 임원식씨의 본지 인터뷰 기사. 조선일보DB


사실 ‘국향’은 음악사에만 존재하는 옛 이름이다. 1956년 창단한 서울방송교향악단이 1969년 명칭을 바꾼 악단이 국향이다. 1981년 국향이 다시 KBS 방송사로 이관되면서 악단 이름도 KBS교향악단으로 변경됐다. 그런데도 논쟁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 당시 국향 상임지휘자였던 고(故) 홍연택 선생이 재창단 과정에서 사임하며 불씨를 남겼다. 그 뒤 1985년 국향 출신 단원들과 함께 창단한 악단이 코리안 심포니다. 두 악단의 원조 논쟁 이면에는 과거 ‘잔류파’와 ‘탈당파’의 뿌리 깊은 대립이 숨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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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내고 1985년 코리안 심포니를 창단한 지휘자 홍연택 선생. KBS교향악단


하지만 이 논쟁을 지켜보는 뒷맛은 그리 개운하지 않다. 국립 명칭으로 정부 지원을 받거나 늘렸으면 하는 속내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오케스트라의 예산은 서울시향(208억원), KBS교향악단(135억원) 순이다. 코리안 심포니 역시 국립 날개를 다는 순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KBS교향악단에도 ‘국향 복귀’는 매력적인 카드다. KBS에서 매년 108억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2025년이면 그 기간이 만료된다.

그동안 코로나 시대에 예술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적지 않았다. 방역과 민생의 이중고에 지친 국민들을 정서적으로 위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하지만 ‘원조 논쟁’은 이런 고민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물론 ‘예술계는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고민이 있다. ‘세상을 위해서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한국 음악계는 혹시 이 화두를 잊고 있는 건 아닐까.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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