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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매경데스크] 위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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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구를 향해 수십 m 크기의 혜성이 날아온다. 만에 하나 지구와 충돌하면 재앙이다. 멸종 수준 이벤트를 의미하는 'Extinct Level Event(ELE)'란 검색어를 유튜브에 입력한다.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사라졌다는 유의 영상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정보의 신뢰성이나 퀄리티는 제각각이다. 천문학 문외한이 팩트(사실)와 깊이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중에 맘에 드는 영상 하나를 클릭. 나름 과학적인 논리를 동원해 열변을 토한다. 이것저것 훑어보던 중 눈에 띄는 추천 영상이 보인다. 제목은 '오늘만 산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비장함이 담긴 건가? 아니다. 알고 보니 인기 예능 '짤방'이다. 너무 재밌다. 추천에 추천을 거듭하며 예능 짤방에 빠져든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생각한다. '뭘 하다 여기까지 온 거지?' 알고리즘이 잠시나마 공포를 잊게 해주려는 목적이었다면 성공.

문득 검색놀이에 빠진 건 이 영화 때문이다. 돈 룩 업(Don't Look Up). 지구를 향해 혜성이 돌진하는 전형적인 SF 재난영화다. 사전 정보 없이 무심코 봤기에 영웅이 나타나 지구를 구하는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할리우드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거 웬걸, '혜성이 6개월 후 지구와 충돌한다'는 한 가지 외엔 모든 것을 비틀었다. 선거가 전부인 정치인, 시청률에 목맨 미디어, 혜성이 아닌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자의 밈 영상에 열광하는 대중까지. 종말론적 위기조차 재미가 우선이다. 온 세상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희화화되고 극단적인 주장일수록 논란을 키우고 호기심을 자극해 더 멀리 퍼져나간다. 팩트나 균형 같은 단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급기야 룩 업(하늘을 좀 봐라), 돈 룩 업(볼 필요 없다) 진영이 대립하며 영화는 절정에 달한다. 스토리가 과장됐을망정 "말도 안된다"며 웃어넘기기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1990년대 후반 나온 딥 임팩트나 아마겟돈 같은 SF 재난영화가 블랙코미디의 소재가 될 만큼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했다. 그 한복판에 디지털이 있고, 알고리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혜성 충돌의 해법을 찾아왔다는 기업인이 "우리는 당신의 죽음도 알 수 있다"고 공언하는 모습을 보고 섬뜩함을 느끼기보다 "앞으론 그럴 수도 있겠네"라며 고개를 끄덕일 만큼 알고리즘은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됐다.

알고리즘이 지향하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라는 건 알고 보면 인터넷 초창기부터 곳곳에서 줄기차게 시도돼왔던 개념이다. 개인용컴퓨터(PC)로는 제한적이었지만, 개개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24시간 스마트폰 데이터가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만개했다.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알고리즘은 쇼핑 패션 음식 등과 같은 의식주뿐 아니라 뉴스 책 영화 등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까지 끊임없이 추천하고, 좋아할 만한 이벤트를 곁들여 선택하도록 꼬드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에 꽂힌 순간, 반대편 논리도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는 대신 그 주장을 강화시킬 콘텐츠가 먼저 추천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가 폭발한 지 불과 10여 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알고리즘은 맞춤형 서비스를 넘어 예측형 서비스로 진화했다. 마치 "나는 네가 올여름에 무슨 일을 할지 알고 있다"는 투다. 내가 잊었던 기억조차 기억하고 분석하고 있으니, "틀렸다"고 자신 있게 반박하기도 애매하다.

텍스트든 영상이든 인터넷 콘텐츠 제작자들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문제는 그러한 노력이 질적 향상과 동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데이터 폭발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지구인을 모두 동원해도 하루 데이터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알고리즘과 함께 살아가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동시에 위드 알고리즘은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블랙코미디가 현실이 되지 않을 대안은 과연 무엇인지.

[황형규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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