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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20년전 시작된 범LG家 '아름다운 이별'…자산 5배 급증하며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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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 REPORT : LG그룹 분할의 역사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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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LG그룹이 본격적인 계열분리를 추진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2002년 LG그룹은 LG전선(현 LS전선)의 독립을 공식화했다. 그해 고(故) 구인회 LG 창업 회장과 함께 LG그룹을 일군 고 허준구 LG건설(현 GS건설) 명예회장 자녀들은 건설·유통 계열사로 이동하며, GS 출범을 예고했다. LIG와 아워홈은 이에 앞서 분리됐다. 2007년 LG패션(현 LF), 최근엔 LX가 LG에서 떨어져 나왔다.

LG그룹 분할의 역사에서 패자는 없었다. LG뿐 아니라 분리된 그룹들도 성장했다.

2001년 말 기준 LG그룹의 공정자산은 54조원 규모였다. 여기엔 건설·유통·전선 계열뿐 아니라 증권과 카드 등 금융계열사도 포함됐다. GS, LS, LF 등이 분리되고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과 LG카드(현 신한카드) 등 금융회사들이 매각됐지만, LG는 성장을 계속했다. 2011년 말 자산 100조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자산은 151조3220억원에 달했다. 매출은 123조4340억원 규모다.

GS는 2004년 계열분리 당시 자산 18조7190억원에 그쳤지만, 2020년 말 기준 자산은 67조6770억원에 이른다. 재계 8위다. LS는 자산 4조원에서 25조원대 재계 16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2020년 말 기준 LG(LX 포함)와 GS, LS, LIG, LF, 아워홈을 아우르는 자산은 약 252조원에 이른다. 이는 SK그룹(239조원)보다 큰 규모다. 매출도 확대됐다. 2002년 LG그룹 매출은 80조원에 달했다. 2020년 LG와 GS, LS, LIG, LF, 아워홈 등을 합친 매출은 약 202조원을 기록했다. 약 2.5배 증가한 셈이다.

LG의 첫 계열분리는 1999년 LG화재였다. LG화재는 구인회 창업 회장의 첫째 동생 고 구철회 LG 창업 고문 일가가 맡게 됐으며, 2006년 사명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으로 변경했다. LIG그룹은 2004년 LG이노텍 방위사업부문(현 LIG넥스원)을 인수했다.

2000년에는 LG유통 식품서비스사업부문(현 아워홈)과 LG벤처투자(현 LB인베스트먼트)가 LG에서 분리 독립했다. 아워홈은 구인회 회장의 셋째 아들(구자학), LB는 넷째 아들(구자두) 회사다.

본격적인 계열분리는 2001~2002년 진행됐다. 2002년 4월 LG그룹은 "2003년으로 예정된 지주회사 전환을 앞두고 계열분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LG그룹은 2001년 4월 화학부문 지주회사 LGCI(LG Chem Investment), 이듬해 4월에는 전자부문 지주회사 LGEI(LG Electronics Investment)를 설립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두 회사를 합병해 그룹 지주사인 (주)LG를 세웠다. (주)LG 지분 구조는 구자경 LG 명예회장 직계가족 위주로 이뤄졌다.

지주사 체제는 경영구조를 21세기 주력 핵심사업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추진됐다. 이를 위해 대주주들은 복잡하게 연결된 출자·지분 구조를 정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계열분리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계열분리 하이라이트는 구태회·평회·두회 LG 창업고문 일가와 허씨 측 몫의 결정이었다.

구씨 측에서 구태회·평회·두회 회장 가계의 계열분리를 위해 LG전선(현 LS전선)을 중심으로 극동도시가스(예스코), LG니꼬동제련(LS니꼬동제련), LG칼텍스가스(E1) 등을 한 그룹으로 모아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허씨 쪽은 허준구 명예회장이 일본 기술을 도입해 전선업의 기반을 닦은 LG전선을 포기하는 대신 LG칼텍스정유와 건설, 유통 등을 가져가기로 했다. LG는 전자·화학, GS는 정유·유통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업종으로 큰 그림을 그린 가운데, 전선 같은 제조업보다는 유통 분야를 키우는 게 그룹 시너지 측면에서 낫다고 허씨 측은 판단했다.

당시 허씨 가족회의에서 "간난을 무릅쓰고 키워온 회사(LG전선)를 포기하기엔 아쉬움이 크지만 '미래를 끌고 갈 사업'을 갖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허 명예회장은 1971년부터 LG전선 경영을 맡았으며, 장남 허창수 회장은 1995년 LG전선 회장에 취임했다.

그런데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는 100% 허씨가가 가져간 게 아니었다. LG칼텍스정유의 자회사 중 LG칼텍스가스와 극동도시가스는 LG칼텍스정유에서 분리돼 LG전선그룹(LS그룹)으로 가게 됐다. LG칼텍스정유 성장에는 구평회·두회 형제가 기여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은 1974년부터 1987년까지,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은 1987~1993년 LG칼텍스정유(당시 호남정유) 대표를 역임했다. LPG 수입회사 LG칼텍스가스는 여수에너지라는 이름으로 1984년 설립됐으며, 초대 대표는 구평회 명예회장이었다. 구두회 명예회장은 여수에너지에서 이름이 바뀐 호유에너지 회장을 지냈다.

재계 관계자는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준구 명예회장 등 원로들이 두 가문 내부적으로 이해를 조정하고 지분율에 따라 어떤 것을 분리해낼지 상호 이해를 구하는 데 앞장섰다"고 전했다. 허준구 명예회장은 허씨 몫 회사들이 결정된 후인 2002년 7월 세상을 떠났다.

LG에서 분리되는 회사들이 정해진 후 인사가 있었다.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열 LG투자증권 영업총괄 부사장이 2001년 10월 LG전선 부사장으로 이동했다. 구 명예회장의 차남 구자용 LG전자 상무는 그해 LG칼텍스가스로 옮겼다.

2002년 3월엔 허창수 LG전선 회장이 LG건설 회장에 선임됐다. 허 회장의 동생들인 허명수 LG전자 상무는 LG건설로, 허태수 LG투자증권 상무는 LG홈쇼핑으로 이동했다. 2003년 1월엔 허동수 LG칼텍스정유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LG전선과 LG니꼬동제련은 2003년 3월 (주)LG 설립과 동시에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삼성동 아셈타워로 이전했다. 공정위는 2003년 11월 LG전선, LG니꼬동제련, LG칼텍스가스, 극동도시가스의 계열분리를 승인했다. 2004년 1월엔 고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 장남인 구자홍 LG전자 회장이 LG전선 회장에 취임했다. LG전선그룹은 2005년 3월 사명을 LS그룹으로 바꿨다.

분리의 백미는 1947년 LG 창업 이후 57년간 3대에 걸친 구씨와 허씨의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2004년 4월 (주)LG 이사회는 그룹을 제조와 서비스 부문으로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어 그해 7월 (주)LG는 화학·전자부문 지주회사인 존속법인 (주)LG와 서비스부문 신설법인 (주)GS홀딩스 등 두개의 지주회사로 분할됐다. GS홀딩스와 LG칼텍스정유, LG유통, LG홈쇼핑, LG건설 등 14개사는 2005년 1월 계열분리를 완료했다. 그해 3월 모든 계열사 이름에 LG 대신 GS가 들어갔다.

2006년엔 LG상사에서 패션부문이 분사해 LG패션(현 LF)이 설립됐다. LG패션은 2007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LF는 구인회 회장의 차남 고 구자승 LG상사 회장 일가 회사다.

LG의 성공적인 계열분리 원동력은 합리적인 원칙에 바탕을 둔 인화와 지배구조다.

범LG가는 사전에 충분한 합의를 거쳐 원칙을 정하고, 정해진 원칙을 지키며 결과에 대해서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왔다. 원칙 중 하나는 철저하고 엄격한 재산 배분이다.

독보적인 1인자가 없는 지배구조도 계열분리가 분란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각자 지분을 철저하게 관리하면 많은 형제들이 경영에 참여해도 분란의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구광모 회장 인화전통 이어받아 LG 이끌어…삼촌들은 모두 독립경영

구본준 전 LG고문 LX로

"젊은 경영자에 부담 안준다"
선대 경영인들 전통 이어져
4대에 걸친 회장 승계도 원만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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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LG 회장은 구인회-구자경-구본무로 이어지는 LG가(家) 장손이자 그룹 4대 회장이다. LG그룹에 적을 둔 구자경 명예회장 아들·손자는 구광모 회장이 유일하다. 구 회장의 삼촌들은 모두 LG에서 독립했다.

LX그룹은 지난해 5월 출범했다. LX 설립과 함께 고 구본무 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본준 전 LG 고문, 그의 장남 구형모 전 LG전자 책임 등은 LX로 옮겼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지주사 LX홀딩스 최대주주(20.37%)이며, 구형모 LX홀딩스 상무는 2대주주(11.75%)다. LX홀딩스에 구광모 LG 회장 지분은 없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계열분리 승인이 나면, LX는 완전히 LG 품을 떠나게 된다. LX홀딩스 자회사는 LX인터내셔널(옛 LG상사), LX하우시스(LG하우시스), LX세미콘(실리콘웍스), LX MMA(LG MMA) 등이다. 최근엔 LX인터내셔널이 한국유리공업 인수에 나서는 등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은 LX그룹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회사로, 구본준 회장은 2007~2010년 이 회사 대표이사를 지냈다.

LX그룹은 2020년 연결기준 매출 약 16조원, 자산은 8조원 안팎이다. 재계 50위권이며, 오는 4월께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이 예상된다.

앞서 구본무 회장의 첫째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1992년 희성화학을 갖고 나갔다. 희성그룹에선 2019년 LT그룹이 분리됐다. 당시 구본무 회장의 막냇동생 구본식 LT그룹 회장은 희성금속, 희성정밀, 희성소재, 삼보이엔씨 등을 갖고 독립해 LT그룹을 설립했다.

구자경 명예회장 형제 중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과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은 LG에서 분리가 아닌, 직접 회사를 세웠다. GS그룹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의 큰형 허정구 씨는 삼양통상을 설립했다. 현재 대표는 허정구 명예회장의 장남 허남각 회장이다. 허준구 명예회장의 동생인 허완구·허승효 회장은 각각 승산과 알토를 창업했다.

LG는 계열분리뿐 아니라 세 번의 회장 승계도 모두 원만하게 이뤄졌다.

구인회 창업 회장은 1969년12월 31일 별세했다. 재계의 관심은 차기 회장에 쏠려 있었다. 당시 LG에는 구인회 회장의 형제들과 사돈인 허씨 경영인들이 주요 요직에 있었다.

창업주 첫째 동생인 구철회 당시 락희화학 사장은 1970년 1월 6일 그룹 신년 시무식에서 "나는 작년 12월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구자경 부사장을 제2대 회장으로 추대하자"고 밝혔다.

이어 사흘 뒤인 1월 9일 합동이사회에서 당시 구자경 금성사 부사장을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했다. 구철회 사장 등 구씨 경영진뿐 아니라 허씨들도 구자경 회장 체제를 적극 지원했다.

구자경 회장은 최고의사결정 협의기구인 그룹운영회의를 설치했다. 의장엔 구철회 사장이 추대됐고, 위원은 구자경·구정회·구태회·구평회 등 구씨 경영진과 허준구 금성사 사장, 박승찬 락희화학 사장 등으로 구성됐다.

1995년 2월엔 구본무 제3대 LG그룹 회장이 취임했다. 허창수 LG산전 부사장은 LG전선 회장에 임명됐다. 구 회장 취임과 함께 구자경 회장은 물론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LG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젊은 경영자들의 활동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구자경 회장 뜻에 구·허 양가의 창업세대 경영자들이 기꺼이 동의하고 '동반 퇴진'한 것이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다음달인 2018년 6월 그룹 회장에 선임됐다. 구광모 회장 체제와 함께 그간 그룹을 이끌어왔던 구본준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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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 재계·ESG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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