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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현대重, 대우조선 합병 무산 “EU 법원에 시정요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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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한국조선해양이 해외 선사 3곳과 선박 9척, 1조3300억원 상당을 수주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사진은 현대중공업그룹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LNG 추진 대형 컨테이너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 현대중공업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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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그룹이 지난 3년간 추진해온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이 사실상 무산됐다.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이 액화천연가스(LNG)선의 시장 독과점을 문제 삼으면서다. 이로써 길게는 20년 넘게 끌어온 대우조선 주인 찾기는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EU 집행위원회는 13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신청한 기업결합 심사 결과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두 회사의 LNG선 분야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60%대에 달하는데, 이것이 시장 독과점을 초래할 수 있는 우려에서다.

시장에서는 주요한 LNG선 고객사인 머스크(덴마크)나 CMA CGM(프랑스) 같은 유럽 해운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EU가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동안 두 회사는 기업결합 심사를 받은 6개국 중 카자흐스탄‧싱가포르‧중국 등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기업결합 심사 6개국 중 한 곳이라도 불허가 나오면 인수는 어렵게 된다.

현대중공업 지주는 이날 성명을 통해 “EU 공정위의 결정은 비합리적이며 유감스럽다”고 입장을 밝혔다.

현대중공업 지주는 “조선 수주는 입찰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이뤄지고, 입찰 승패에 따라 점유율이 크게 변동한다”며 “현재 점유율만으로 독과점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최종 결정문을 검토한 후 EU 법원을 통한 시정 요구 등 가능한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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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3월 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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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업계에선 3년을 끌어온 인수가 무산되자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이어 “장기적으로 한국 조선업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애초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그룹과 손잡고 대우조선 M&A를 추진한 것은 경쟁이 심한 조선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삼성중공업) 체제를 ‘빅2 체제’로 재편하려는 목적이 컸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뿌리인 대우중공업은 1999년 대우그룹이 좌초하면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조선과 기계 사업부문을 분리해 각각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종합기계로 출범한다.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에 인수돼, 두산인프라코어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다시 현대중공업그룹에 인수된 상태다. 하지만 대우조선은 20년 넘게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2000년대 초중반 호황을 누렸으나 이후 실적이 고꾸라진다. 익명을 요청한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014년부터 조선업황이 좋지 않을 때 과당 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 폐해가 컸다”며 “조선 3사가 수년간 생사의 갈림길을 겪으며 빅3 체제로는 한국 조선업이 경쟁력을 갖기 어렵고, 빅2로 가는 게 낫다고 정부와 업계가 결론을 내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계 1~3위를 기록했지만, 조선 3사는 수주 선종과 기술력이 엇비슷해 번번이 ‘출혈 경쟁’을 벌이곤 했다. 이 관계자는 “업황이 좋을 때는 큰 문제가 안 됐지만 반대일 경우 공멸 위기감까지 번졌다”고 했다.

다만 이번 인수 불발로 당장 두 회사가 받을 악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물동량 증가로 조선 수주가 늘어나서다.

대우조선해양 측도 “수주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1~2년 내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다만 재무구조가 문제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297.3%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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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도크 모습. [사진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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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신상기 지회장(왼쪽 다섯째)이 지난 2019년 9월 26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대우조선 매각ㆍ현대중공업 인수 해외 기업결합심사 대응 유럽연합 경쟁총국 의견서 전달을 위한 노동자대표단 출국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는 그동안 합병을 반대 투쟁을 벌여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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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이날 EU의 합병 불허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유감 성명을 냈다.

대신 정부는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했던 때는 과잉 공급 문제가 컸지만 최근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여건 개선을 최대한 활용해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 제고와 대우조선 정상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또 “대우조선의 근본적 정상화를 위해선 ‘민간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대주주인)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대우조선 경쟁력 강화 방안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지분 55.7% 보유하고 있다.

한편 시장에서는 한때 대우조선 인수를 검토·추진한 적이 있는 포스코나 한화, GS, 효성 등을 인수 후보로 거론한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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