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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지금 던진 그 말도 미래 언어의 씨앗이 된다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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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래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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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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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상 미디어 콘텐츠 사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영화와 드라마들을 안방에서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만든 작품들도 세계적으로 흥행을 하면서 불거진 논란 가운데 하나가 대사의 번역 문제였다. 특히 대화 상대방을 이름이나 ‘너’ ‘당신’과 같은 2인칭 대명사로 잘 지칭하지 않고 ‘오빠’ ‘형’ ‘사장님’ ‘사모님’ ‘영감님’ 등으로 부르는 한국어의 특성과 각 존칭의 미묘한 심리적 지표를 살리지 못한 번역에 대한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기독 성경 창세기 11:1-9에는 대홍수 뒤 시날(Shinar)이라는 곳에 모인 인류가 하늘에 올라가려고 탑을 쌓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라오려는 모습을 보고 ‘이제 인간들은 감히 못하는 일이 없겠구나’ 생각한 신은 ‘바벨탑’이 완성되기 전 먼저 땅에 내려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말을 못 알아듣게 해버리고 온누리에 퍼져 살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1525년경~1569년)의 ‘바벨탑’(그림1·1563년)은 그 이야기를 그렸다.

‘바벨물고기’가 존재한들

더글러스 애덤스의 SF소설 속
‘바벨물고기’ 같은 번역기가 나와
어떤 언어든 알아듣게 되더라도
모든 사람이 소통하는 건 불가능

창세기가 쓰여지고 나서 긴 시간이 지난 뒤에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1952~2001)라는 작가는 인기 연작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시리즈에서 ‘바벨물고기’라는 동물을 등장시킨다. 노란색의 이 물고기는 거머리 정도 크기로 사람의 뇌파를 먹고 살고, 그 가운데에서도 사람 두뇌 언어영역의 파동을 일종의 텔레파시 신호로 변환해서 배설하는 기묘한 존재인데, 이러한 기능 때문에 바벨물고기를 사람 귀에 넣어두면 그 사람은 남들이 하는 모든 언어를-지구 종족의 언어이든, SF답게 우주 종족의 언어이든-자기 모국어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꿈의 번역기 역할을 하는 부차 기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적어도 이 히치하이커의 우주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별에서 온 어떠한 종족을 만나도 그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일이 없다!

그렇다면 그 우주는 서로 다른 언어의 번역 문제 때문에 허구인 드라마 번역 따위를 갖고서도 티격태격할 일이 없는, 완벽한 소통이 가능한 곳이 아닐까?

모두가 말이 통하는 그런 세상을 상상하다보니, 몇년 전 한 여행지에서 겪은 일이 기억난다. 약 5년 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라는 나라와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을 때였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아드리아해에 걸친 아주 짧은 해안선을 제외하고는 내륙에 위치한 유럽 남동부 국가인데, 지금은 냉전 종식과 함께 해체되어 사라진 유고슬라비아 연방(1918~1991)에서의 탈퇴 문제를 두고 1992~1995년 내전을 겪은 뒤 탄생하였다. 지금도 한국대사관이 없을 정도로 우리와는 교류가 적고 사라예보는 인구가 50만명도 채 되지 않지만 어릴 때부터 특이하게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유럽 역사를 완전히 바꿔버렸다고 평가받는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페르디난드 대공(1863~1914)이 암살된 곳이었고, 1973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한 일은 어린 시절 전설처럼 이야기되고 있어서 사라예보에 대한 인상이 좋았고, 그랬던 곳이 내가 머리가 조금씩 커가던 고교·대학 시절 적군에 포위되어 포격을 받으며 연일 국제 뉴스면을 장식하는 충격과 비극의 중심지였기에 뇌리에 강하게 박힌 모양이다.

자동차로 옆나라 크로아티아에서 사라예보로 가는 길은 꽤나 험난했다. 산길은 낡아 미끄러웠고 그 주변에선 종전 20년 이후에도 전쟁의 흔적이 아직 물씬 남아 있는 폐허와 같은 장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환경이 그러한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사라예보 시내에서 우리를 안내해주던 가이드도 틈만 나면 사라예보 포위전 얘기를 하면서 그 상처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떨 때는 도시 관광보다 전쟁 얘기를 더 많이 해주는 그를 보며 당시 일로 그렇게 감정이 서로 상했을 민족들(3대 민족으로 보스니악·크로아트·세르브 족이 있다)이 어떻게 한 나라를 이루어 살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도 대통령이 있는가?

가이드=있다.

나=민족 갈등이 심해 보이는데 대통령에 대해 불만이 없나?

가이드=각 민족(보스니악·크로아트·세르브)을 대표해서 한 명씩 있다.

나=대통령이 세 명인데 정부가 어떻게 작동을 하나?

가이드=당연히 작동을 안 한다.

가이드의 마지막 너스레에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사람 사이에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바벨물고기 같은 기적적인 존재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언어의 본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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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79억 인구의 모국어 91개
독자적인 언어는 7000개에 달해

글과 말을 빠르게 교환하는 시대
언어의 변화도 어느 때보다 빨라

언어의 신비로움과 가치에 대한 제일 멋들어진 표현은 1660년 프랑스 베르사유 근처의 포르-루아얄-데-샹(Port-Royal-des-Champs) 수도원에서 나왔다고 한다. “언어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서른 개 남짓의 소리로 우리 마음속의 비밀, 머릿속 상상, 영혼이 느끼는 감동을 타인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무한한 종류의 표현을 하게 해주니 말이다.”

그런데 2021년 현재 79억명에 달하는 세계 인구, 달리 말해 79억개의 마음속 비밀·상상·영혼이 공통적인 소리 조합의 규칙에 따라 서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황홀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나, 사실 모두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역시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사항일 것 같다. 위의 ‘세 명의 대통령 체제’가 말해주듯이 말이 같아도 소통이 막힌 경우를 잠시 논외로 치더라도, 또 세계 인구 가운데 최소한 1000만명이 모국어로 삼고 있는 언어는 91개 있고(한국어는 약 7700만명에게 모국어로서 세계에서 14위라고 한다), 독자적인 언어는 7000개나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언어는 시간에 걸쳐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한 언어 안에서도 죽어가는 단어, 새로이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어서 실제로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지구 어딘가에서 한순간이라도 존재하는 언어의 수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글과 말을 빠르게 교환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언어의 변화가 어느 때보다도 더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1%의 우리가 볼 때 전 세계 인구의 99%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특히 한국어의 경우는 영어-스페인어 사이만큼 가까운 외국어가 없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도 유창한 수준으로 올라서기가 아주 어렵다. 미국 국무부에서 외교관을 훈련하는 외교연수원(Foreign Service Institute)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배우기 쉬운 말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스웨덴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이 1군을, 독일어가 2군을, 그리고 한국어·일본어·중국어·아랍어가 제일 배우기 어려운 4군을 이루고 있다. (적어놓고 나니, 영어 배우기 어렵다고 꼭 슬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영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한국어는 배우기 어렵다!)

번역과 외국어 구사의 어려움에 관해서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경험이 있다. 세계의 언어에 관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본 거주 캐나다인인 폴이라는 친구가 한국어 영상을 만드는데 목소리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해온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읽어야 할 문장들을 폴에게 받아보니 적지 않은 수가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수정해서 제안을 하자 폴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는지 되물어왔다. 자신은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유창하고, 한국어와 일본어의 문법이 같다고 들었는데 왜 직역한 문장들이 잘못되었냐는 것이었다. 결국엔 내가 준 도움에 고맙다고 하였지만, 언어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다시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비슷한 언어 사이라고 해도 아주 짧은 문장조차 직역을 하게 되면 어색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된 언어의 본질과 현실적 특성을 생각해볼 때 우리 다음으로 이 지구를 군림하게 될 미래 인류의 ‘비밀·상상·영혼’을 담아내는 미래의 언어는 도대체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아마도 다음의 시나리오가 모두 가능할 것 같다.

1. 바벨물고기 같은 기적의 기술이 등장하여 모두가 서로 말을 더 알아듣기 쉽게 된다.

2. 바벨물고기 같은 기적의 기술이 등장해도 들을 말만 듣거나, 안 들리던 말을 듣게 되면서 오히려 싸움이 늘어난다.

3. 늘어난 소통으로 세계 언어가 빨리 수렴해서 더욱 비슷해진다.

4. 기존 언어가 더 빠르게 바뀌어서 더욱 다양해진다.

1·2번, 3·4번이 서로 상충되는 것 같지만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는 사람들의 복잡한 내면세계, 그리고 항상 변화해가는 살아 있는 언어의 특성을 고려할 때 아마도 이 네 개 시나리오는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래의 언어는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일까?

모방은 인간 행위의 강력한 동기
언어도 결국 ‘들었던 것’을 사용
우리가 말을 할 때마다
미래 언어의 모양 조금씩 갖춰져

‘독을 품은’ 말을 사용할수록
미래의 언어는
우리가 소망하는 것에서 멀어질 것

인간 행위의 동기로서 제일 강력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고 따라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나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는 다른 사람들을 거의 절대적으로 기준 삼아 행동한다. 언어 구사도 당연히 마찬가지여서 새로운 상황이나 환경에서 새로운 문장을 구성해야 할 때는 결국 어딘가에서 이미 남에게 들어봤거나 의식적으로 따라하고 싶은 말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많이 사용되는 것이 살아남는 진화의 원리에 따르면 ‘지금 내가 쓰는 말은 살아남고, 쓰지 않는 말은 죽어 없어진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우리가 내뱉는 모든 말은 미래 언어의 씨앗이 되고, 우리가 말을 할 때마다 미래 언어의 모양이 조금씩 갖추어진다. 특히 어느 때보다 누구나 목청을 높여서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는 온라인 시대의 우리는 원하는 미래의 언어가 아름답고 창의적인 언어인가, 아니면 독을 품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언어인지 고민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미래 언어를 원하는지는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에 어긋나는 말을 사용하면 할수록 미래의 언어는 우리가 소망하는 그것으로부터 자꾸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 있는 최고의 초능력을 하나 대라고 할 때 꼽히는 이 강력한 ‘언어’라는 위대한 능력도,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을 이율배반과 의지의 부족을 이겨낼 수는 없으니까.

▶박주용 교수

경향신문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네트워크과학·복잡계과학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데이나-파버 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시스템스 생물학을 연구하고,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와 예술의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제주도에 현무암 상징물 ‘팡도라네’를 공동 제작·설치했고, 대전시립미술관의 ‘어떻게 볼 것인가: 프로젝트 X’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창시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남는 시간에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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