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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부, 위드 코로나 현실 인식 안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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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기조를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전환한 후 연일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고조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치료의 중심이 경증 환자 재택치료-중증 환자만 입원 치료로 전환됐으나 의료체계가 마비되면서 재택치료에서 구멍이 확인되고, 입원 치료는 밀려오는 환자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행동하는간호사회, 의료연대본부 등 보건 및 의료단체와 인권단체는 서울 종로구 르메이에르종로타운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위드 코로나 전환 후 의료마비 상황이 어느 정도인가를 설명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사실상 의료 대응 능력이 마비된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간호인력의 대대적 확충과 공공의료 자원 재원 투입이 필요하며, 위드 코로나를 중단하고 거리두기로 전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택치료 불가능한 사람도 많은데 대책은?

위드 코로나 전환 당시 정부는 하루 확진자 최대 1만 명 상황에 대비하겠다며 병상 확충에 나섰다. 그와 동시에 경증 환자는 재택 치료를 원칙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막상 의료 사각 지대에 놓인 이들은 재택치료를 받을 환경도 마련되지 않았다며, 정부 대응이 약자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위원장은 "올해 지역 사회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한 후 열악한 근로조건, (집단이 거주하는) 기숙사 상황으로 인해 이주 노동자 사이에서도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지자체들은 이주 노동자를 바이러스 전파자로 낙인 찍었고, 감염의 근본 원인을 개선할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라이 위원장은 "이주 노동자는 코로나19에 감염되어도 재택치료를 할 수 없다"며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사업장 내 가건물 등에서 집단 거주하는 이들은 확진자와 분리되어 치료받기 어렵다"고 현실을 봐 달라고 강조했다.

언어 문제로 인해 재택치료를 제대로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라이 위원장은 호소했다. "이주민에게 재택치료를 권하는 것은 사실상 코로나19 감염을 방치하겠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이주민의 경우 생활치료시설을 적극 제공하고 통역도 제대로 제공해야 한다"고 라이 위원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중증 장애인 역시 재택치료 전환으로 인해 의료 사각 지대에 놓였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 전환 후 장애인 자가격리자뿐 아니라 코로나19 확진자도 긴급돌봄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필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획실장은 "지난달 말 재택치료가 가능하도록 긴급돌봄과 활동지원사 파견이 필요하다고 보건소와 지자체에 요청했으나, 확진자에게는 활동지원사 파견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장애인 확진자는 (경증이라도) 바로 병원 입원이나 생활치료센터로 이송해야 하지만 그쪽은 자리가 없다는 도돌이표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사실상 장애인 확진자가 완전히 방치되는 상황에 처했다는 주장이다.

김 기획실장은 "장애인 확진자의 경우 활동지원인력(사회서비스원 활동지원사, 민간 활동지원사, 가족 등)이 동반할 수 있도록 의료체계가 개선돼야 하고, 현장에서 이 같은 제도가 제대로 적용되는지 점검도 필요하다"며 "이 같은 조치 없어 정부 부처마다 책임 떠넘기기만 한다면 장애인은 누구보다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9일 서울 종로구 르메이에르종로타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현장의 의료 대응 어려움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인의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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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일수록 입원 어려워"…처참한 현실 증언

코로나19 감염 시 특히 중증으로 전환할 확률이 커 위험한 집단인 고령층의 경우, 요양시설 동일 집단 격리(코호트 격리)로 인해 확진 환자가 코호트 격리 중 입원을 대기하다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방은숙 의료연대본부 요양시설 조직국장은 요양시설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 격리로 인해 "중고령대의 요양보호사들이 방호복을 입고 힘겹게 직접서비스를 하고 있고, 치매로 인지능력이 떨어진 어르신들은 지속적으로 마스크 착용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언제 노동자가 확진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별도의 독립된 격리실이 없는 요양원에서 실제로 집단감염이 속출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 같은 입원 대기가 연출되는 근본 원인은 병상이 부족하고 의료인력이 태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날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기준 전국의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병상 1255개 중 989개가 이미 사용 중이다. 병상 가동률은 정부가 비상계획 조치 기준으로 설정한 75%를 넘은 78.8%에 달한다.

이에 따라 이날 0시 기준 하루 이상 입원을 기다리는 확진자는 수도권에서만 1003명에 달했다. 하루 이상 대기자가 489명, 이틀 이상 대기자는 124명, 사흘 이상 대기자는 88명이며 나흘 이상 대기자가 302명에 이르렀다. 의료대응 역량이 한계에 다다라,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정형준 인의협 공공의료위원장은 "생활치료센터에서 일하는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생활치료센터에 들어오는 환자의 중증도가 상승하고 있다"며 "입원 병상이 모자라 입원해야 할 환자가 생활치료센터로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생활치료센터 입소자 가운데 상태가 악화해 병원으로 전원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그로 인해 안 그래도 대기자가 많은 입원 대상 중증 환자가 점차 늘어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정 위원장은 "경기남동부 공공병원인 코로나19 전담병원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10월까지는 산소치료 이상의 처치가 필요한 중증 환자 비율이 10~20% 정도였으나, 지금은 거의 30~50% 수준으로 올라갔다"고 전했다.

중환자실도 포화 상태에 이르러 의료 대응 한계가 점차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수도권 중환자실 가동률이 85.0%(9일 기준)까지 치솟으면서 사실상 중환자가 증가하더라도 대응할 방안이 없는 상태다.

정 위원장은 "중등도 환자를 전담하는 지방의료원 의사에 따르면, 60세 미만 환자의 경우는 쉽게 중환자실로 전원이 되지만 80세 이상 고령환자는 증상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중환자실 전원이 쉽지 않다"며 "고령 환자는 치료가 어렵고 치명률이 높아 상급종합병원이 배정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사망 위험이 큰 고령자의 입원이 더 어려운 처참한 상황이 현실화한 것이다.

정 위원장은 "이 때문에 지방의료원 등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는 고령환자가 입원할 때 증상이 악화해도 중환자실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설명하며 연명의료중단동의서를 작성하도록 환자와 보호자에게 요청하고 있다"며 "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은 DNR(소생치료거부) 동의를 해야 전원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간호 인력 태부족…책임은 정부에"

최은영 서울대병원 중환자간호사는 "평소에도 간호인력은 항상 부족한 상태인데, 코로나19 이후에는 간호사 사직률이 21.3%까지 올라갔다"며 "업무 강도가 올라가면서 간호사를 충원해도 충원한 만큼 사직하니 기존 인력 피로도가 가중돼 중간 연차의 사직이 줄을 잇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간호 인력 부족 문제는 특히 중환자실 가동률을 높이지 못하는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인의협 등 의료단체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 공공의료역량 강화를 위한 핵심 방편의 하나로 간호 인력 확충과 간호 인력 노동 강도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으나 정부 대응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최 간호사는 아울러 "서울의 6개 시립병원 중 4개 병원이 이미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운영 중이고, 남은 곳은 서울의료원과 보라매병원뿐"이라며 "서울의료원마저 응급실을 폐쇄한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은) 일반 시민은 갈 곳이 없어진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최 간호사는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보건의료산업노조가 지난 5월, 6월에 지속적으로 간호인력 충원을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하반기에 괜찮아질 것'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며 "그 결과가 한 병동에서는 전체 간호인력 30명 중 심폐소생술(CPR)도 해본 적 없는 3개월 미만 신규인력이 12명에 달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했다.

우석균 인의협 공동대표는 결국 이 같은 의료 공백 사태 책임은 시장에 코로나19 대응을 맡긴 정부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 대표는 "최근 들어 한국의 코로나19 치명률이 1.4%가 넘을 정도로 치솟았다. 영국의 다섯 배, 독일의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이라며 "아직 정부가 상황을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현재 방대본이 밝히는 코로나19 누적 치명률은 0.82% 수준이다. 그러나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가 제공하는 주간 평균 치명률을 보면, 한국의 최근 한 주간 코로나19 치명률은 8일 기준 1.43%로 일본(1.27%), 독일(0.56%), 영국(0.28%)에 비해 크게 높다. 위드 코로나 전환 후 중환자와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한 데 따른 후유증이다.

우 대표는 "최근 들어 확진자가 급증하자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부 강화하고 대형병원 병상 동원 명령을 병상당 3% 수준으로 내리고 백신 접종률 상향을 대책으로 내놨으나, 이 모두 상황을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라며 "즉시 방역 강화 조치를 강력하게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체제로 즉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 대표는 "이로 인한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의 피해는 사회적 정책으로 해결"해야 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피해에도 정부가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 대표는 아울러 대형 사립대병원을 대상으로 정부가 강력하게 병상 동원령을 내려야 하고, 공공병원 강화정책도 즉시 제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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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주간 미국(최상단)과 한국, 일본, 독일, 영국의 주간 평균 코로나19 치명률 비교 데이터. 2%가 넘어 압도적으로 높은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의 치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ourworldindat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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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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