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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상 첫 수능 정답 효력 집행정지…이과 상위권 대입영향 불가피(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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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Ⅱ 정답결정 유예…응시생 6천500여명 성적 통지 늦어져

"전체 정답 처리시 표준점수 최고점 1∼2점 하락"…평가원 공신력 타격

연합뉴스

수능 출제오류 논란...집행정지 신청한 수험생들
출제오류 논란이 불거진 수능 생명과학Ⅱ 문항을 둘러싼 첫 법정공방이 열린 지난 8일 오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집행정지를 신청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심문이 끝난 뒤 법정에서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9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채점 결과가 발표됐으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을 유예하라는 법원 결정이 나면서 수능 성적 통지에 일부 제동이 걸렸다.

생명과학Ⅱ 응시생은 전체 응시생의 1.5%에 불과하지만, 서울대·의대 등을 지망하는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인 만큼 앞으로 대입 일정에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공신력도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이날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정답 결정 효력을 본안 소송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본안 소송은 같은 재판부에 배당됐으며 오는 10일 첫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집행정지는 행정청의 처분을 둘러싼 본안 소송이 끝나기 전에 처분의 집행 또는 효력을 임시로 막거나 정지하는 것이다.

이번 문항이 실제로 오류인지, 정답 처리가 바뀌어야 하는지 판단이 이뤄지지는 않았으나 응시생들의 피해 가능성을 막기 위해 실제 판단이 나올 때까지 성적을 확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원이 수험생들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평가원은 당장 10일로 예정된 성적 통지를 일부 보류할 수밖에 없게 됐다.

평가원은 일단 전체 응시생 44만8천138명 가운데 생명과학Ⅱ 응시자 6천515명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수험생에 대해서는 성적을 예정대로 통지할 예정이다.

생명과학Ⅱ 응시생 6천515명의 성적 통지는 보류하기로 했으며, 생명과학Ⅱ만 공란으로 두고 나머지 성적을 통지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

1994학년도 수능이 시행된 이후 수능 정답 효력에 대한 집행정지는 28년만에 처음이다.

앞서 법정에서 출제 오류로 판명된 2014학년도 수능 사회탐구영역 세계지리 8번 문항의 경우 응시생들은 평가원이 채점 결과를 발표한 직후 결정 처분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1심 판결에서 응시생들이 패소했고 집행정지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입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됐다가 10개월가량 지난 시점인 2014년 10월 2심에서 응시생들이 승소하고 평가원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성적이 재산정됐다.

지난달 18일 치러진 올해 수능에서 논란이 된 생명과학Ⅱ 20번은 집단 Ⅰ과 Ⅱ 중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보기]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문항이다.

이의 제기자들은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중대한 오류가 발생해 제시된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문항 자체가 오류라고 보고 있다.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이 문항에 대해 '이상 없음' 결론을 내리면서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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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Ⅱ 정답결정 유예…응시생 6천500여명 성적 통지 늦어져 (CG)
[연합뉴스TV 제공]


만약 본안 소송에서 응시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모든 답이 정답 처리되면 응시생들의 생명과학Ⅱ 성적이 달라지게 된다.

이날 발표된 채점 결과에서 생명과학Ⅱ 표준점수 최고점은 69점으로 6명이 이 점수를 받았다.

이 과목을 선택한 응시생 수(6천515명)는 전체 수능 응시생(44만8천138명)의 1.5%에 불과하지만 과학탐구 Ⅱ 과목 가운데서는 가장 많다.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과목이다.

서울대, 울산과기원, 한국과학기술원 등은 과탐 Ⅰ과 Ⅱ를 반드시 응시해야 하고 한양대, 단국대 의예, 치의예, 약학과, 광주과기원, 대구경북과기원 등에서 가산점을 준다. 생명과학Ⅱ을 특정해 가산점을 주는 의대도 있다.

종로학원은 "20번을 전원 정답 처리하면 평균 점수가 올라가면서 표준점수 최고점이 69점보다 1∼2점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서울대, 의예과 등에서 지정·가산점 부여 과목이라 전국 의약학계열 등 상위권에 폭넓게 영향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화학Ⅰ, 생명과학Ⅱ 조합의 학생들은 최상위권 학생 구간에서는 학생들이 더 밀집돼 점수 경쟁이 치열한 상황 발생이 불가피하다"며 "수시·정시 일정에 영향을 미치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하므로 빨리 성적을 재처리하는 게 가장 안정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4학년도 세계지리 8번 문항의 경우, 평가원은 오답 처리됐던 응시생들의 원점수를 이 문항의 배점인 3점을 올리면서 기존의 등급·표준점수·백분위 산정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성적을 재산정했다.

이미 성적이 통지돼 대입 절차가 진행된 상황에서 전체 세계지리 등급·표준점수·백분위를 바꾸면 기존 정답자들은 물론이고 새로 정답 처리되는 응시생 일부의 성적이 오히려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체 오답 처리자의 48%인 9천73명의 등급이 올랐다.

판결이 나온 시점은 수능이 치러지고 1년 가까이 지나 입시가 모두 마무리된 뒤였으며, 성적 재산정에 따른 대학교 추가 합격자는 600명 이상이었다.

법정 다툼은 없었으나 앞서 2004·2008·2010·2015·2017학년도 수능에서도 출제 오류가 인정돼 복수정답이 인정되거나 '정답 없음'으로 처리된 문항이 있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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