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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미국 등 나토는 ‘키예프’ 위해 피 흘릴 각오 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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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 대군으로 우크라이나 위협하는 러시아

‘키예프 위해 피 흘려야 하나’ 회의적인 나토

“1938년 뮌헨회담의 역사적 교훈 떠올려야”

세계일보

지난 6월 벨기에 브뤼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서 화상으로 열린 북대서양위원회(NAC) 회의 모습. NAC는 나토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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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이 과연 키예프(우크라이나 수도)를 위해 피를 흘리려고 할까.’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최고조에 달하고 이에 맞서 미국 등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반드시 보전하겠다”는 입장이나 과연 러시아가 침공을 강행했을 때 이를 무력으로 막을 수 있을지를 두고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1938년 체코 주데텐란트 위기 때 ‘파리도 아니고 프라하를 위해 피를 흘려야만 하나’라는 딜레마에 직면한 프랑스가 결국 동맹국 체코 방어를 포기했던 뮌헨회담 때의 교훈을 제기한다.

◆17만 대군으로 우크라이나 위협하는 러시아

8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들 사이에서 ‘나토의 정식 회원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번지고 있다. 나토 규약상 집단안보 발동 요건은 ‘회원국’이 비회원국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다.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나머지 회원국 전체가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군대 파견 등 집단안보 절차에 돌입해야 하지만 공격을 받은 나라가 회원국이 아니면 그럴 의무가 없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파트너’ 국가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식 회원국은 아니다.

현재 서방 정보기관에선 러시아가 내년 초 17만여명의 육해공군 병력을 총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내전에 휘말린 사이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자국 영토인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긴 아픈 기억이 있다. 이번에 군사대국 러시아가 기어이 침략을 강행한다면 우크라이나는 그때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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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부터), 앙겔라 마르켈 당시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법 논의를 위한 4자회의를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파리=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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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위해 피 흘려야 하나’ 회의적인 나토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은 그간 러시아를 향해 “우크라니아가 당하면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과 7일 이틀에 걸쳐 나토 주요 회원국 정상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그리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과 전화 통화를 하며 러시아에 맞설 대응책을 강구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나토와 긴밀히 협의한다’는 원칙론만 확인했을 뿐 ‘나토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우크라이나가 현재 나토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보 달더 전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NYT에 “나토가 우크라이나와 매우 가깝지만, 회원국이 아닌 그들의 독립과 주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것은 테이블 위에 없다”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도, 미국의 동맹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위해 미군을 희생시킬 순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인 다수가 ‘키예프를 위해 미군이 피를 흘릴 순 없다’고 여기는 현실을 감안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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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끝)이 백악관 상황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화면 속)과 우크라이나 사태 해법 등 논의를 위한 화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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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뮌헨회담의 역사적 교훈 떠올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 등 나토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때 그랬듯이 우크라이나 국토 유린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면 서방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사실상 러시아에 굴복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비판이 만만치 않다. 1938년 체코 위기 때 프랑스가 저지른 오판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은 독일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체코의 주데텐란트 땅을 독일에 할양할 것을 체코 정부한테 요구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체코는 동맹국인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자국 안보를 위협받는 것도 아닌데 체코 문제로 독일과 전쟁을 하는 게 싫었다. ‘파리도 아니고 프라하를 위해 피를 흘릴 순 없다’는 것이 프랑스 국민 다수의 정서였다. 결국 프랑스는 동맹국 체코 방어를 포기했다. 얼마 뒤 유럽의 네 강대국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상이 독일 뮌헨에 모여 회의를 열고 주데텐란트의 독일 양도를 결정했다. 이듬해 체코는 전체가 독일에 병합되면서 지도상에서 아예 사라졌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프랑스도 독일에 항복하는 굴욕을 겪는다. 후세 역사가들은 “1938년에 프랑스가 단호하게 행동했다면 2차대전 개전, 그리고 독일의 유럽 지배를 막을 수 있었다”며 아쉬워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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