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제주4·3 희생자 70여년 한 풀린다…내년부터 국가 보상 시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가 보상 총액 규모 사상 최대, 5년간 단계적 지급

혼인·친생자 관계 특례 삭제로 사각지대 우려 목소리도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국가가 제주4·3 희생자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4·3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행방불명인 표석 위로 뜬 무지개
[연합뉴스 자료 사진]


국가 차원에서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4·3의 아픔을 달래고 어긋난 과거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도록 국회가 다시 한번 제역할을 다한 셈이다.

지난 2월 전부 개정을 한 데 이어 이날 일부 개정까지 완료됨에 따라 내년부터 5년 동안 제주4·3 희생자 및 유족에게 국가 폭력에 대한 보상으로 1인당 최대 9천만원이 지급된다. 1차년도 보상금 총 1천810억원이 이미 내년 예산에 편성됐다.

특별법 개정으로 제주4·3 당시 유죄 판결을 받은 2천530명에 대한 직권재심 절차도 신속하게 추진되고 있다.

다만 일부 특례 조항이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삭제돼 보상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연합뉴스

위패봉안실 찾은 유가족
[연합뉴스 자료 사진]


◇ 1인당 최대 9천만원 지급, 피해 보상 완전 종결

정부는 제주4·3특별법 제16조에 따라 배상이 아닌 희생자에 대한 보상으로 명시했다.

배상은 위법행위에 따른 대가이지만, 보상은 적법행위에 따른 손해를 갚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이 혼재된 점을 고려해 적법행위와 위법행위를 모두 아우르는 손해전보까지 포함한다는 취지로 보상금으로 명시했다.

다만 배상과 보상의 성격적 혼선을 우려해 '위자료 등'이란 규정을 달았다.

신청인이 희생자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하면 민법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이번 보상금으로 제주4·3 피해 보상이 완전히 종결되는 셈이다.

정부는 의료지원금 등 '적극적 손해'와 '일실이익'(逸失利益·장래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포함된 '소극적 손해', 위자료를 포함한 '정신적 손해'를 모두 포함해 1인당 보상액을 최대 9천만원으로 산정했다.

사망 및 행방불명 피해자에 대해서는 1인당 9천만원이 단계적으로 지급되며, 후유 장애 피해자나 수형인에 대해서는 피해 정도에 따라 9천만원 이하로 차등 지급된다.

희생자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 보상 청구권자는 보상 결정 당시 민법을 준용해 상속되도록 했다.

희생자의 제사를 지내거나 장례를 지냈거나 무덤을 관리하던 유족이 숨지거나 이를 물려받은 직계비속으로 예외적으로 5촌까지 보상청구권을 갖는다.

정부는 희생자와 유족을 판정하는 심의를 진행해 희생자 중 유사한 개별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았거나 유족이 없거나, 국가유공자로 보상을 받은 대상으로 제외한 1만101명을 보상 대상으로 정했다.

전체 보상액 규모는 약 9천90억원으로, 내년부터 5년간 단계적으로 지급된다.

1인당 배상액은 울산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배상 판결액(1억3천200만원)보다 작지만, 전체 금액으로는 역대 단일 과거사 관련 사건에 대해 배·보상한 금액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제주도는 '4·3보상금지원팀' 신설을 담은 '행정기구 설치 및 정원 조례' 개정안을 오는 17일 제주도의회 임시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4·3보상금지원팀은 제주시와 서귀포시 등 양 행정시에 마련돼 각 읍·면·동에서 신청받은 보상금의 지급 실무를 맡게 될 전망이다.

제주도는 또 지난 7월부터 4·3 희생자에 대한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실종 선고 청구 신청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국회사진기자단]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은 4·3특별법 제12조(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에 4·3으로 인해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돼 있지 않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경우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이를 작성 또는 정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된 데 따른 것이다.

국회는 지난 2월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을 의결한 데 이어 보상금 지급 방안 등을 보완하기 위해 이번 일부 개정안을 마련하게 됐다.

제주4·3 특별법 전부 개정을 통해서는 4·3 당시 수형인 2천530명의 유죄 판결에 대한 직권 재심 청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법무부와 검찰은 지난달 24일 제주시 연동에 '제주4·3사건 직권 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을 마련했다.

합동수행단은 당시 공소장과 공판 기록, 판결문 등 소송 기록을 최대한 복원하고, 현장 조사와 고증을 통해 재심 사유가 있는지 확인한 뒤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이들 수형인은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군법회의에서 간첩죄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들이다.

수형인 명부에는 2천530명의 이름과 나이, 직업, 본적지, 판정, 선고 일자, 형량 등이 수기로 적혀있다.

◇ 혼인신고 특례 삭제…혼란 우려

하지만,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논의 과정에서 희생자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이후 신고된 혼인 관계 및 친생자 관계를 인정해주는 특례조항이 삭제됐다.

제주4·3의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해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및 정정 신청 대상 확대를 위한 특례조항이 삭제되면서 가족 관계 인정을 받기 위해 개별 소송을 해야 하는 불편함과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73년 전 발생한 제주4·3으로 도민 3만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으면서 양자나 수양딸로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에 오른 이들은 최대 1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4·3 당시 부모가 희생된 후 자녀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조부모 또는 큰아버지·작은아버지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하고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린 사례도 있다.

이같이 희생된 부모 이름 밑으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거나 어머니가 재가해서 친생자들의 성이 바뀐 경우 보상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연합뉴스

분향·헌화하는 참석자들
[연합뉴스 자료 사진]


4·3 당시 사실과 다르게 등록된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으려고 해도 70여 년이 흘러 쉽지 않고 행방불명 희생자 자녀는 유전자 비교 검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혼인신고와 관련해서도 사망 이후 혼인한 것으로 신고한 사례가 더러 있지만 이런 경우 사망자와의 혼인을 인정해주지 않는 현행 민법 조항으로 혼인 자체를 인정받기 어렵게 됐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출생한 자녀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자식이라고 인정받는 인지 청구 특례도 법사위에서 삭제되면서 당사자가 개별 소송을 제기해 증명하는 길밖에 없다.

또한 제주4·3 당시나 이후 여러 이유로 호적을 다르게 올렸을 경우 유족이 호적상의 이런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등의 신청 대상을 유족을 제외한 희생자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내년 1월 제주4·3 희생자와 배우자·자녀 간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를 정정하는 제도개선 연구 용역을 발주해 희생자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 친자들이 가족관계부 정정을 통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정비를 할 방침이다.

고규창 행정안전부 차관은 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나와 "이와 관련한 부분에 해당한다면 (보상 지급) 기간에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더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kos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