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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李 "경제는 정치" 尹 "선택할 자유"…확연히 다른 경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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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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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경제관이 한 국가의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논할 때 주로 비교되는 게 한국과 중남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똑같이 독재 정권을 겪었지만 ‘수출 지향’ 산업화 전략을 택한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며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반면 ‘수입 대체’ 산업화 전략을 고수한 중남미는 여전히 경제적 여러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무역론에서 흔히 언급되는 이 사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업적으로 꼽히기도 한다. 출범 당시만 해도 역대 정부에 비해 반미(反美) 성향으로 분류된 노무현 정부도 2007년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해 “경제 영토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도 지도자의 경제관은 경제 발전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다. 지난달 4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를 면담한 미국 뉴욕타임스(NYT) 임원진도 이 후보가 가진 경제관에 대해 물어봤다고 한다. 미국 언론 입장에선 동아시아의 핵심 파트너인 한국의 대통령 후보가 어떤 경제관을 가졌는지가 중요했던 까닭이다.

이렇듯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경제관은 서서히 국민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7일 서울대 경제학부 학생들에게 특강하는 자리에서 “경제는 과학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치”라며 “상황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 정책과 그 결과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 후보의 ‘경제는 정치’라는 표현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해결사로 활약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2012년에 쓴 책의 제목 『경제는 정치다』와 같다. 물론 두 사람의 세부 정책이나 접근법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시장주의자”라고 강조하면서도 결국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선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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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지난 7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청년살롱 이재명의 경제이야기' 금융경제세미나 초청 강연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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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특강에서 자신의 정책인 ‘기본금융’과 관련해 “부자들은 잘 갚는 집단이니까 이자율이 엄청 싸고, 가난하면 이자를 엄청 높게 내야 한다. 이게 정의롭느냐”며 “금융의 공공성이 그래서 필요하다”고도 했다.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이자가 싸고, 낮을수록 이자가 비싼 통상의 금융 개념과는 정반대의 주장이었다. 역대 정부에서도 저소득층이나 대학생 등을 위한 저리의 대출을 해주는 정책을 펴오곤 했다. 하지만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할수록 정책금융의 영역은 커지게 되고 그럴수록 가뜩이나 관치금융의 폐해가 여전한 금융업계에 정부의 입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 이 후보의 기본정책 시리즈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역할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곧바로 후퇴하기는 했지만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며 언급한 ‘음식점 허가 총량제’의 경우 “전체주의 발상”(윤석열 후보)이라는 강한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이에 반해 윤석열 후보는 시장주의자에 가깝다. 윤 후보는 2019년 7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았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카고학파의 대표적 학자다. 윤 후보는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때 부친이자 경제학자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이 책을 선물받았고 “2007년 대검 검찰연구관을 할 때까지 책을 항상 갖고 다녔다”고 한다.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다가 이른바 ‘부정식품’ 논란을 겪기도 했지만 정부 개입보다는 ‘시장의 힘’에 맡기는 시장친화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이다.

윤 후보의 이러한 경제관은 그동안 발표된 정책에도 스며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윤 후보는 공공임대를 통한 주택 공급을 강조하고 있는 이 후보와는 다른 방향으로 부동산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전면 재검토와 1주택자 보유세 완화, 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 등 ‘규제와 세제의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정부 도움이 필요한 주거 약자와 일반 주택 수요자를 구분해 후자의 경우 시장 거래를 활발하게 만드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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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열린 청년문화예술인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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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윤 후보의 경제관은 주류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시장에 맡기되 정부는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반면 이 후보는 시장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경제의 방향성 자체를 바꾸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 ‘정치가 경제에 앞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극단 이재명·윤석열 경제관 보완화는 하준경과 김종인



이렇듯 이재명·윤석열 후보만 놓고 보면 양극단의 경제관에 가깝다. 하지만 두 후보를 돕는 사람 중에선 이들의 좌표를 가운데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인사가 눈에 띈다. 이 후보의 ‘경제 책사’로 통하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와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다.

조지프 슘페터의 성장론을 연구한 거시경제학자인 하 교수는 이 후보가 제1공약으로 내세운 ‘전환적 공정성장’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 후보 직속의 전환적공정성장전략위원장도 맡고 있다. 스스로 “중도 성향”이라고 밝힌 하 교수는 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의 경제 정책을 ‘자동차 보험’에 비유했다. 그는 “자동차 보험을 안 들면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못 내지 않느냐”며 “사회적 안전망이 있어야 혁신을 통한 성장이 더 잘된다는 연구가 많은데, 이 후보의 기본정책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준경 “불확실성 큰 지금, 정부 역할 커져…시장 친화적 국가 투자”



윤 후보가 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를 강조한 데 대해선 “과거에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때 국가가 기업을 돕는 역할을 했다”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세계화가 후퇴하고 지역주의가 득세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정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2조3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인 ‘아메리칸 잡스 플랜(American Jobs Plan)’을 언급하면서는 “미국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간 대신 정부가 전략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 후보 경제 정책 방향도) 국가가 시장을 대체한다기보다 시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면서 시장 친화적 국가 투자를 하는 것”라고 설명했다.

박정희 정부 때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의료보험(현 건강보험) 도입을 제안하고, 1987년 개헌 당시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는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김종인 위원장은 보수 성향보다는 진보 성향에 가깝다. 시장주의자로 통하는 윤 후보와도 정부의 역할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그는 지난 7일 ‘더좋은나라전략포럼’ 강연에서 “경제에서 공정을 찾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 다 맡기면 안 된다”며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느닷없이 ‘시장 원리에 따라서 하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김종인 “시장원리 맡기겠다는 건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것”



‘자영업자 피해 보상’에 윤 후보가 투입하겠다고 밝힌 50조원의 두 배인 100조를 투입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인터뷰 발언도 논란이다. 이날 오후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이 “자영업자 피해 보상과 관련한 윤석열 후보의 공약은 50조원 투입”이라며 “이 공약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원톱’으로 선대위를 이끌게 된 김 위원장이 선거 기간 윤 후보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공약을 내놓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정학을 전공한 한 국립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는 사실상 주류 경제학자가 없다시피 했지만 이재명 후보 캠프에는 (주류와 가깝지만) 진보적인 경제학자가 많이 있는 걸로 안다”며 “기본소득을 비롯해 이재명·윤석열 후보 캠프 간에 정책 대결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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