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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그래,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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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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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지면을 통하여 스포츠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사회 속으로 들어가서 변화하는 사회적 상식과 욕망에 기반하여 스포츠가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것이 스포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바로 그렇게 사회적 열망과 부응할 때 스포츠 산업이 확장되고 청년 스포츠인들의 일자리가 확충되고 그들의 활력과 신념에 의하여 사회 전체가 새로 연결되어 신체적 안전망과 심리적 관계망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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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나의 이러한 주장은 독자적이고 독창적인(설마 그럴 리가) 주관이 아니고 이미 ‘스포츠 선진국’에서 한 세대 이전부터 구현된 것이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수년 동안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각국의 스포츠 기구와 그 책임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IOC는 2014년 8월 ‘올림픽 어젠다 2020’을 결의하였는데, 스포츠가 사회 변화를 적극 수용(시민권, 환경권, 문화권)하고 사회 각 분야와 높은 수준으로 결합하여 국가대항전 위주의 과거 올림픽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는 대전환을 하자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더하여 2021년 3월, IOC는 기후위기, 국제적인 시민적 요구, 4차 산업혁명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 등 당면한 상황에 대처하여 기존의 어젠다에 ‘+5’ 권고안을 추가로 결의하였다. 지속 가능성, 선수의 권리, 다양한 가치, 굿 거버넌스의 실현 등이 그것이다.

이를 작금의 현실에 대입하여 보면 우리 체육계가, 특히 체육인들을 대변하는 대한체육회가 이러한 대전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판단해 보면 답답하다.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 스포츠의 대전환을 추동하면서 그 새로운 가치를 접목하고 확산하는 움직임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세상 속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 사회의 문화 안전망은 취약하고 사회 연결망은 끊어지고 있다. 숱한 사회적 긴장과 대결이 곳곳에 만연하여, 일반적 의미의 ‘고독’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갈등과 해체에 따른 ‘사회적 외로움’이 증대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영국 정부는 2018년 1월,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겸직 임명했다. 우리 주제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겸직’ 임명된 장관이 ‘스포츠 및 시민사회 장관’이란 점이다. 왜 경제나 복지가 아니라 스포츠 장관이 사회적 외로움을 해결할 장관으로 임명되었을까. 이미 질문 안에 답이 있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사회적 관계 안에서 접촉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므로, 다른 정책 단위보다 훨씬 더 사회적 외로움에 대한 구체적 해결의 다양한 방법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해서 무엇이 다르겠는가. 서울연구원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관계의 외로움과 사회적 관계의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사회 활동이 활발한 30대의 57.8%가 그 사회적 활동 속에서 외로움을 겪고 있다. 악착같이 ‘존버’해야 하는 상황에 끝없이 내몰리고 있다는 비정한 사회적 상황의 결과다. 이때 스포츠가 촉매가 된다면 외로움은 어느 정도 누그러질 것이고 이로써 움츠렸던 기운이 사회적 활력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나는, 스포츠를 통한 문화적 도시재생과 사회적 관계망의 촉진으로 그것을 자주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우리 체육계는 기존의 ‘사다리 올라타기’에 올인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 사회적 가치, 미적 가치는 사라지고 혹독한 경쟁의 사다리만 놓여 있다. 대한체육회와 그 책임자들, 특히 IOC 권고를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위원들마저 단 하나의 사다리에 올라타기를 강요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그 사다리를 걷어차는 트랙을 고집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절박한 상황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경주마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차안대를 씌워 앞만 보고 달리도록 요구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 상황을 악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오징어 게임>의 대사처럼 이러다간 다 죽게 된다.

나는 2010년 10월부터 이 귀한 지면에 칼럼을 써왔다. 첫 칼럼에서 “학생들이 학교 공동체에서 ‘방출’된 채 운동에만 온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에 대하여 썼는데, 10여년이 지난 마지막 칼럼도 이런 소회로 마치게 되었다. 스포츠의 가치, 선수들의 아름다움, 새로운 경지의 엔진 소리를 갈아넣고 싶었으나 연속되는 상황에 의하여 매번 ‘오프사이드’를 외치고 말았다. 그래도 퇴장이라고 외친 적은 없다. 까짓 오프사이드 아닌가. 그러니 다시 시작하자.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모두가 살기 위하여, 오프사이드!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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