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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인생+] 젊은 꼰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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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행에 가까운 세계일주나 대륙 횡단을 경험한 젊은 여행자들의 특강에 자주 가보았다.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나중에 복기해 보니 힘든 여행 한 번 하고 와서 마치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닫고 온 사람처럼 말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여행은 경험치의 세계라 경험해 보지 못한 ‘지금 여기 우리’에게 경험하고 온 ‘그때 거기 그 사람’은 심리적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여행 한 번 했다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경향신문

고재열 여행감독


여행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오해의 영역에 가깝다. 여행자의 섣부른 깨달음을 보고 해당 지역을 연구하는 지역학자는 웃을 것이다. 세계 4대 여행서의 공통점이 있다. 진실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내용의 진실성은 물론 저자가 직접 썼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것도 있다. 여행자의 깨달음도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오해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 빈번한 PC(Political Correctness)논쟁을 볼 때도 그런 불편함이 있다. 자신의 마이너 감수성을 과시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다. PC논쟁은 일종의 ‘태도 게임’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약자인 이들에게 이런 민감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 당신들은 왜 그렇지 못한가’ 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낸다.

행동과 실천이 아니라 태도와 감수성으로 우열을 가리는 이런 PC논쟁은 현대판 예송논쟁이라 할 만하다. 예송논쟁은 언제 나타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극복하고 조선왕조가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났다. 행동과 실천이 절박하지 않을 때였다. 쓸데없는 국력 낭비였던 이 예송논쟁 이후 조선왕조의 붕당정치는 변질되어 패거리 정치로 전락한다.

PC에 집착하는 이들은 행동하고 실천했던 선배들에게도 거침없다.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의 표현처럼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고 할 만한 노병들에게 왜 군인의 전투화가 깨끗하지 않은가라고 따져 묻는다. 행동하거나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약자에 대한 감수성 게임에만 열심이다.

약자에 대한 지나친 감수성의 발로로 그들은 당사자가 문제 삼을 필요 없다는 사안에도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 태도가 당사자를 ‘이런 침해에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시킬 수 있음에도 거기에는 무심하다. 단지 자신의 문제의식을 뽐내려는 그들의 태도는 ‘내가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라는 전제를 달며 충고하는 꼰대들의 변명과 다를 바가 없다.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겨루기 위해 그들은 매번 다른 신상 PC논쟁을 들고와서 우쭐거린다. ‘나는 이런 것에도 민감하게 느낀다’고 과시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대접받으려 하는 것이 꼰대의 역학이다. 더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해서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것 역시 꼰대다.

약자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이 섬세한 것은 좋은 일이다. 좋은 것은 티내지 않아도 번지게 되어 있다. 제발 배움을 청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르치려 들지 마라. 그것이 바로 꼰대의 시작이다. 그 판에서 누가 꼰대인지 보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의심해보라. 당신이 바로 꼰대일 수 있다.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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