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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아파트 청약때 '릉'자 피해야하나"…서오릉 태릉서도 문화재·아파트 건립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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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송전 번진 왕릉 앞 아파트 ◆

매일경제

문화재위원회가 9일 `장릉뷰 아파트`에 대해 심의를 열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일부 건설사들이 해당 심의를 거부하고 법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8일 오후 경기 김포시 장릉에서 논란이 된 검단신도시 아파트가 보인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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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신도시 김포 장릉 사태가 법정 공방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구상 중인 수도권 주택 공급 계획에도 연쇄적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선 왕릉 경관 훼손'과 '주택 공급'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택지개발지구에는 김포 장릉뿐만 아니라 서울 태릉과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등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야심 차게 발표했던 '3기 신도시'가 들어설 고양 창릉 지구에 대해서도 개발 용지 일부가 왕릉 5기가 모여 있는 서오릉 반경 500m 이내에 속해 있어 문화재 보호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한국 정부에 '창릉신도시 계획이 서오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8·4 공급대책을 통해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서울 노원구 태릉은 조선시대 왕릉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정부가 지난해 "태릉 인근 용지를 개발해 아파트 1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자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시작됐다. 시민단체들은 "태릉 주변 사격장을 폐쇄하고 선수촌을 이전하는 등 노력을 하면서 태릉 권역 보전을 위해 노력했는데 아파트 건설로 과거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태릉 지구에 공급하는 가구 수를 6800가구로 축소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문화재청도 "아파트 층고에 따른 경관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관 훼손 여부를 분석하고 개발 구상 마련 과정에서 왕릉에 가까워질수록 주택 층고를 낮춰 왕릉 주변 수목 경계 위로 건물이 보이지 않는 층수 등도 검토했다"고 해명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풍납토성 일대는 주변 개발이 20년 넘도록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풍납동 주민들은 "1997년 토성 주변에서 문화재가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동네 대부분이 개발제한을 받고 있다"며 "땅을 깊게 파지도 못하고 건물을 높이 짓지도 못해 송파구에서 가장 낡은 동네로 전락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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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각 부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문화재 보호와 주택 공급 차질 논란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논란이 지속 중인 김포 장릉의 아파트 단지 3곳은 내년 6~9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입주 예정 물량만 3400가구에 달한다. 이미 2019년 분양을 끝낸 상태다. 건설사들은 남은 공정을 마무리하는 데 6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사실상 연내 공사 재개가 물 건너가면서 입주 일정 지연도 불가피해졌다.

태릉과 서오릉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김포 장릉보다 공급 규모가 훨씬 큰 데다 왕릉과의 위치도 가깝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 태릉과 서오릉 주변 아파트 건설을 허용하면 김포 장릉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태릉과 서오릉 반경 500m 내 아파트 건설을 불허하거나 높이를 확 낮출 경우 공급 주택 수가 확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특히 서오릉이 위치한 창릉신도시의 경우 곧 사전청약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왕릉 경관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입주가 하염없이 지연되거나 최악의 경우 입주를 못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와 문화재청이 주택 공급과 조선 왕릉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라는 부처별 목표 달성에만 매몰돼 다른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며 "정부 부처 간 엉터리 행정 때문에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꼬집었다.

한편 김포 장릉 사태는 건설사와 문화재청 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건설사들은 예정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부하고 나선 이유에 대해 "2014년 이미 관련 인허가 절차를 끝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검단신도시 사업 시행자인 인천도시공사가 2014년 해당 아파트와 관련해 문화재보호법상 '현상변경 등 허가'를 받았고, 이를 승계받아 적법하게 아파트를 지었다는 주장이다. 지난 7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로부터 갑작스러운 '공사 중지 명령'을 통지 받고 "심의 절차만 진행하면 공사 지속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문화재청이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A건설사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고시에도 토지 매각부터 사업계획 승인 시까지 최고 층수와 용적률, 건폐율 등은 변경된 부분이 없다"며 "일단 심의를 중단하고 문화재청 고시의 법리적 효력과 재심의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심의 신청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B건설사 관계자도 "문화재청이 사실상 아파트 철거라고 결론을 내두고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문화재청 고시 자체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건설사들의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4년 현상변경 허가는 '택지'에 대한 것이고, 2017년 개정된 고시에 의해 개별 건축물은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사들의 허가 신청 철회와 관계없이 심의가 가능하다던 문화재청은 이날 돌연 입장을 바꿨다. 허가 신청 철회를 요청한 2개 건설사의 신청 건이 심의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9일 문화재위원회에서는 별도 철회 요청을 하지 않은 대방건설의 신청 건에 대해서만 심의가 진행된다.

[김동은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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