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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프로 '좁은문' 고려하면 학습권이 먼저다 [배우근의 롤리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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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야구 유소년팀을 운영하는 A감독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연말이라 안부를 겸했지만 최근 도마위에 오른 학습권과 운동권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는 엘리트 선수 출신으로 프로야구 선수까지 경험했다. 그런데 지금은 유소년을 상대로 이기는 야구가 아닌 즐기는 야구를 추구하고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을 아이들에게 열어주고 있는 것.

그는 아이들에게 회비로 태권도 한달 등록비 수준만 받는다. 유니폼 비용은 따로 받지 않는다. 부모로부터의 촌지도 당연히 없다.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기 때문에 부모가 감독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경기에 나서는 타순과 포지션은 아이들이 의논해 정한다. 특정 포지션에 아이들이 몰리면 이닝을 나눠 그라운드로 나선다.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도 같은 방식이다. 실제 경기에서 이들은 엘리트 야구팀을 상대로 지기 일쑤다. 그러나 아이들의 표정을 밝기만 하다.

A감독은 엘리트 체육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다른 결론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정과 평등이다.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가능한 보장했고 일체의 주입식 교육을 없앴다.

이런 모습은 대학진학이나 프로선수를 희망하는 기존 엘리트 선수들에겐 이상향에 가깝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더 나은 곳으로 진학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그의 실험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A감독과 아이들이 경기에 나서면 상대는 더 기를 쓰고 이기려 한다.

그럼에도 A감독은 야구 몰빵에 반대한다. 그는 아이들의 학습권 보장을 강조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성장기 어린시절의 무리한 운동은 인대, 연골손상을 부를 의학적 확률이 높다. 스포츠의 기본은 스피드기 때문에 근력과 밸런스, 유연성 훈련이 장래 훨씬 도움이 된다. 그리고 미국처럼 다양한 종목에서 뛰는 경험이 필요하다. 여러가지를 하면서 적성에 맞는걸 찾아야 한다.

교육적으로 학습권이 중요한 이유는 중도 탈락 때문이다. 어린시절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더라도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야구 몰빵이 아닌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중학교 졸업후 직업고교를 선택하는 것처럼 야구도 몸과 마음에 근육이 붙는 나이에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개 국내에선 초등학교부터 선수등록을 해야 대회참가가 가능하다. 그 말은 초등 시절부터 감독의 권위가 절대적인 현시스템에 종속되는 걸 의미한다. 초중고 야구부의 이해관계가 사슬처럼 얽혀있는 구조에서 아이와 부모는 지도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특출난 재능을 가진 선수만 예외다.

취미와 심화과정 없이 바로 선수가 되는 시스템은 여러 폐해를 부른다. 유수의 대학팀이나 프로팀에 들어가는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대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A감독이 있는 지역내 3개 야구명문고에서 대학팀에 진학한 선수는 7명(수시)에 불과했다. 프로의 문을 통과한 선수는 더 적다.

한 학년당 15~17명의 야구선수가 있고 3개 학교로 계산하면 50여명의 선수중에 불과 10여명만 직업인으로 야구에 도전할 가능성을 얻는다. 초등학교까지 범위를 넓히면 수백, 수천명의 학생중의 극소수만 선택받는다. 대부분의 학생은 중도 탈락한다. 야구에 몰빵한 경우 제2의 인생을 위한 옵션은 별로 없다.

학생선수의 학습권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소 중학교까지 대부분의 스포츠는 그 자체로 즐거운 신체활동이 되어야 하며 학습권 보장으로 운동기계가 아닌 전인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중간에 야구를 그만둔 아이의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공부도 다 했어야…”라고 후회한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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