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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CEO 인사평가 이제 이사회 몫…SK는 새로운 역사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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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대영 산업부장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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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사회는 올해 처음으로 최고경영자(CEO) 인사 평가를 직접 하면서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새로운 첫발을 뗐습니다. "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SK 서린사옥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염재호 SK(주) 이사회 의장은 올해 이사회가 진행한 CEO 평가에 대해 스스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SK그룹 임원 인사 발표를 하루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염 의장은 "객관적 시스템을 통해 인사를 진행한다는 측면에서 당연히 가야 할 방향이고 매우 의미 있는 진전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염 의장은 내년 3월이면 SK(주) 의장으로 활동한 지 만 3년을 맞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9년 그룹 지주회사인 SK(주)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면서 이사회 중심 경영의 신호탄을 쐈다. 최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당시 재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SK는 당시 염재호 고려대 총장을 SK(주)의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면서 진정성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을 펼칠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는 미션을 부여했다.

―SK가 이사회 중심 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사회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최 회장이 줄곧 해온 이야기가 있다. 바로 '이렇게 큰데 내가 어떻게 다 하느냐, 나만 쳐다보고 있지 말아라'다. 최 회장은 CEO들이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하지만 회장도, CEO도, 사외이사도 틀릴 수 있기 때문에 이사회가 필요하다. 서로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일종의 집단지성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최근 한 안건을 두고 최 회장과 사외이사 한 명이 반대를 하고 나머지는 찬성한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 주요 경영 사항은 다수가 결정한 대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최 회장이 먼저 의견을 앞세우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올해 처음으로 이사회가 CEO 평가를 했는데 전체 과정이 어땠나.

▷이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단계다. 외국에서는 가령 이사회가 후계자 구도를 놓고 여러 명을 검토하는데, CEO들은 이에 대해 어항에 메기가 들어온 느낌으로 긴장할 것이다. 우리는 능력 있는 젊은 인재의 발탁은 물론 CEO 평가 방식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했다. 가령 기업 가치를 얼마나 올렸느냐는 주가에도 반영될 텐데, 여기에 함정이 있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CEO들이 주가를 거품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을 함께 평가해야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계량화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CEO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 게 가장 좋은 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업무량이 상당했다. 백조는 우아한 자태로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밑에서 쉼 없이 발버둥을 친다. 사외이사들의 모습이 이와 같았다.

―최 회장이 올여름 '전문경영인 체제가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일본 기업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넘어가면서 어느 순간 대규모 투자가 사라졌다. 소니의 경우도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 회장 시절과 비교된다. 과거 반도체로 위상을 떨친 히타치, NEC 등은 어느 순간 인텔을 쫓아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 반도체 산업의 몰락을 초래했다. 오너 경영의 장점은 대규모 투자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또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본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은 자신의 임기 내 이익을 내는 데 강점이 있다.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경영의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

―올해 SK 인사에는 오너 일가 복귀 이슈가 있다. 아직 진행 중인데 이사회가 어떤 역할을 하나.

▷사외이사들끼리 논의를 많이 하고 있다. 만약 그룹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합의체로서 다양한 측면을 검토할 것이고 의견을 모아 결론을 낼 것이다. 확신하건대 최 회장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 정도야 설명하겠지만 이사회가 이야기하는 대로 쫓아갈 것이다.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이사회가 더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통상 이사회에서 98% 찬성했다고 하면 '거수기'라는 비난이 빗발친다. 하지만 98%의 찬성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 안 되는 걸 올리면 된다. 하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준비도 안 하고 깨질 수 없는 것이다. 국무회의의 경우 100% 찬성이다. 여러 단계의 검토를 거쳐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사회 의결도 이와 같다. 이걸 가지고 사람들은 '회장이 다 한다'고 비난한다.

―최 회장과 학연(신일고·고려대 동문)으로 얽힌 관계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생각이 같으면 같이하지만 아니면 안 한다. 나와 최 회장의 공통점이 있다면 드리머(Dreamer)라고 볼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가야 할 길이라면 왜 먼저 못 가느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드리머란 미래를 설계하는 역할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현실에 발목을 잡히지 않는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훨씬 중요하다(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고 말했는데 리더는 꿈을 꿔야 한다는 의미다. 눈치 보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라 폴로어일 뿐이다.

―두 분의 드리머가 지향하는 SK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서 세금을 내고 기부하는 게 외부 효과였다면 이제는 기업이 사회에 좋은 일을 했을 때 돈이 벌리는 것이 외부 효과가 됐다. 착한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가 중요해진 이유다. 최 회장은 늘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SK가 착한 기업으로 잘돼서 회사 구성원, 나아가 국민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다.

美·中 눈치보는 한국 외교…우리만의 주도적 관점 가져야

매일경제

염재호 의장은 다독하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행정학 교수 출신으로 외교, 문화, 산업 등 다방면에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고 있는 그는 "공부는 일종의 호기심"이라며 "책을 읽는 것은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며, 몇 장만 읽어도 풍부한 아이디어가 생긴다"며 독서 예찬론을 펼쳤다. 염 의장은 "이사회 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는 글로벌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것"이라며 "지금도 한 달에 20권 이상 책을 사고 최소 4~5권은 읽는다"며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공급망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데.

▷한국은 외교가 중요한 국가다. 그런데 네덜란드보다 외교관 숫자가 적고, 캐나다보다도 예산이 적다. 한국은 외교에 있어서 눈치만 보다가 주도적 지위를 갖지 못했다. 전 세계의 미래가 아시아에 있다고 하는데, 고작해야 이 동네에서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 회담 정도만 있다. 한국은 그동안 상대방 의중을 해석만 하다가 '이건 되는 것 같고 저건 아닌 것 같다' 식의 외교를 했다. 이제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문화적 위상도 매우 높다. 미래를 설계하는 그랜드 디자인(Grand Design)이 필요하다.

―외교도 기업 경영도 미·중 사이에서 힘든 상황 아닌가.

▷우리만의 관점이 중요하다. 10여 년 전에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핵심 인사들과 정기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는 나노 스케일로 쪼개는 방식을 쓰다 보니 곧 한계가 올 거라고 했다. 그래서 스택(stack) 방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이뤄졌다. 외교도 기업 경영도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삼성을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은 과거 선폭을 잘게 쪼개고 나눠서 집적도를 높이는 트렌치 방식을 썼다. 그런데 이 방식으로 선폭을 계속 나누다 보면 더 이상 쪼갤 수 없게 된다. 선폭 간 간섭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폭을 나누는 대신 쌓아올리는 스택 방식이 도입됐다. 이는 낸드플래시 등에 적용되며 집적화의 진화를 이뤄내고 있다).

―미국의 투자 요구가 거센데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전 세계적으로 이제 분산화에 대한 요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염 의장은…

△1955년 서울 출생 △1978년 고려대 법대 행정학 학사 △1989년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1990~2020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2010~2015년 서울시 산학협력포럼 회장 △2010~2018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장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 교육기관평가위원회 위원장 △2014~2015년 기획재정부 공공기관경영평가단 단장 △2015~2019년 제19대 고려대 총장 △2019년~현재 SK(주) 이사회 사외이사 및 의장

[정리 = 이윤재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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