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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나의 ‘쿨~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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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다큐멘터리 <길고 긴 잠>(So Long Asleep)을 촬영 중인 데이비드 플래스 교수. 송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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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미래] 정병호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오랜 스승 데이비드 플래스 교수의 병환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 91살. 40년 전 대학원 지도교수로 처음 만났을 때 숀 코너리처럼 생긴 분이 너무 ‘쿨~해서’ 그 앞에선 내 서툰 영어가 더 꼬였다. 식료품점에서 일하며 공부할 때라 찌든 머리, 생선 냄새 나는 손을 씻지도 못하고 아침 수업에 뛰어들어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선생님은 가끔 넌지시 격려해주시곤 했다. 나는 그만큼 이해심 깊은 교수가 되지 못했던 것 같아 부끄럽다.

일본 문화를 연구한 인류학자로서 미국 사회의 일본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던 선생님을 나는 한때 ‘친일파’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청년인 나를, 일본 현지에서 미국 대학생들을 교육하는 센터의 소장으로 추천해서 일본 대학 교수들을 놀라게 한 사람이 바로 플래스 교수다. 아직 일본어는 물론 영어도 부실한 상태였다. 국제화를 부르짖던 일본 사회에 우선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도록 촉구하는 뜻이 담긴 인사였다.

영상인류학 분야를 개척한 선생님은 일본 해녀들의 자연 친화적 경제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부인 힐 교수와 함께 타이 산악 지역 라후족이 화전민에서 농경민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30년간 영상으로 기록했다. 부부는 퇴직금을 모아 라후족 청소년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그 장학금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유학까지 해서 대학교수가 된 사람도 있다. 평생 검소하게 살아온 선생님에게 그 큰 체구에 이코노미석으로 태평양을 오가려면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씨익 웃으며 답하셨다. “견디는 거지, 뭐.”

그런 선생님이 2015년 추석, 일본 홋카이도에서 발굴한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를 고향 땅으로 모시고 오는 한·일 시민단체의 ‘70년 만의 귀향’ 계획을 듣고 그 행렬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85살의 고령 인류학자가 자비로 촬영팀을 꾸렸다. 비용 절약을 위해 카메라 기사와 도와줄 손자만 동행하고 연출, 편집, 자막 작업을 모두 혼자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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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하는 플래스 교수. 송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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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강제노동 현장에서 서울까지 3000㎞를 열흘에 걸쳐 이동하는 귀환 여정에 참여한 플래스 교수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했다. “흰 유골함을 든 동아시아 사람들의 이 모습을 미국인들과 전세계가 보고 배우기를 바랍니다. (…)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는 날을 상상해봅시다. 잃어버린 유골을 담은 상자를 모든 인간의 삶을 담아 가는 신성한 상징으로 바꾸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노력하는 날을. 마침내 우리 모두가 서로를 보듬고 가는 그날은 진정한 세계 평화의 첫날이 될 것입니다.”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길고 긴 잠>(So Long Asleep)은 ‘70년 만의 귀향’을 가해자와 피해자 쪽이 과거의 역사적 희생을 함께 발굴하면서 화해와 평화의 미래를 열어가는 풀뿌리 운동의 선구적 사례로 소개했다. 아시아학회 시사회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이 작품은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자들을 발굴하고 기억하는 전세계 시민운동의 훌륭한 교재라고 평가되었다.

“당신의 인생에 뿌라스가 되면 좋겠다”고 일본식 발음으로 자기 이름을 소개하며 좌중을 웃기던 선생님은 지난해 내가 퇴임하자 일없이 바쁜 명예교수 부대 입대를 환영한다고 축하해주셨다. 주치의에게는 “하루 24시간에 4시간만 더 처방해주시면 모든 증상이 나을 것 같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런 선생님께서 편찮으시다고 해서 안타까워하던 차에 마침 캐나다에서 특강을 하게 되어 그 길에 찾아뵈었다. 퉁퉁 부은 다리에 보조장치를 단 스승은 격한 반가움을 ‘쿨~하게’ 누르고 농부 시인 웬들 베리의 시가 적힌 종이 한장을 내민다.

“세상에 대한 절망이 내 안에서 자랄 때/ 나의 삶과 내 아이들의 삶이 장차 어찌 될까 하는 두려움으로/ 아주 조그만 소리에도 잠 깨는 밤이면/ 나는 오리들이 물 위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며 쉬고, 큰 해오라기들이 사는 곳에 가서 눕습니다/ 나는 야생의 평화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슬픔을 미리 생각하느라 제 삶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한밤중에 깨어 번민하는 그런 나이가 된 제자와 하루하루 힘들게 견디고 있는 스승은 이심전심 아픔을 나눴다. 스승은 그렇게 아름답게 삶을 누리고 또 의연하게 견디는 법까지 가르쳐주셨다.

며칠 머물며 좋아하시던 한국 음식을 다시 맛보게 해드렸다. 선생님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작별 인사를 하고 댁을 나왔다. 선생님이 무거운 발을 끌며 따라 나오셨다. 그 쿨~한 선생님이 속삭였다. “너를 떠나보내기 싫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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