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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운송비 더 드는데도…“기아 납품업체에 현대차 낙찰가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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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대자동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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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납품업체들에 불리한 입찰 제도를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차가 실시한 입찰에서 책정된 최저가 낙찰가를 기아 납품업체들에도 적용한 것이다. 기아 납품업체들은 위치상 현대차 쪽보다 운송비가 더 많이 들어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기아가 내년부터 개선된 알루미늄 합금제품 입찰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문제된 알루미늄 합금제품은 알루미늄 잉곳·용탕으로, 주로 자동차 엔진이나 바퀴에 쓰인다. 공정위는 현대차 등이 실시한 알루미늄 합금제품 입찰에서 담합한 납품업체들을 조사하는 한편, 입찰 제도 자체에도 담합 유인이 있다고 판단하고 현대차 쪽과 제도 개선을 논의해왔다.

기존에 현대차와 기아는 품목별로 여러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하면서 납품 가격은 낙찰자들의 투찰가 중 최저가로 정해왔다. 문제는 현대차 쪽 최저가가 기아에도 적용됐다는 점이다. 최저 투찰가가 각각 현대차 울산공장이 실시한 입찰에서 ㎏당 2697원, 기아 화성공장에서 ㎏당 2699원인 경우 양쪽 납품업체들 모두 ㎏당 2697원에 납품해야 하는 구조다.

이는 운송비의 차이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됐다. 알루미늄 용탕의 원료가 되는 알루미늄 스크랩은 부산항을 통해 수입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알루미늄 용탕은 고온의 액체 상태로 운송되는 탓에 대개 완성차 공장 인근에 위치한 업체가 납품한다. 현대차 울산공장 쪽보다 기아 화성공장 납품업체들이 지출하는 운반비가 더 많은 이유다. 양쪽에 같은 납품 가격을 적용하면 후자의 수익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저가 경쟁입찰을 하면서 최저 입찰 금액보다 더 낮은 가격에 납품대금을 책정하는 행위는 하도급법 위반 소지가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정식 검토를 해보지는 않았으나 일단 이들 업체가 하도급법 적용 대상이 되는지 불투명하고, 또 현대차·기아가 이런 입찰 방식에 대해 납품업체들의 사전 동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기존의 입찰 제도 방식을 기본적으로는 유지하되, 운반비는 따로 책정하기로 했다. 원래는 알루미늄 용탕 납품 가격에 운반비도 포함돼 있었으나, 내년부터는 각각 울산공장과 화성공장까지 드는 운반비를 별도로 반영한다. 최종적으로 양쪽 공장에 납품되는 용탕의 가격도 달라진다. 또 낙찰사 중 1곳에는 납품 포기권을 공식적으로 보장해주기로 했다. 납품 가격이 예상보다 낮게 결정된 경우에는 불이익에 대한 걱정 없이 납품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별개로 공정위는 입찰에서 담합한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납품업체 8곳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206억7100만원을 부과했다. 알테크노메탈 등 8개사는 2011년부터 최근까지 현대차와 기아, 현대트랜시스가 실시한 알루미늄 합금제품 구매 입찰에 참여하면서 사전에 물량 배분을 하고, 이에 맞춰 낙찰 예정 순위와 투찰가도 함께 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4년과 2015년, 2017년에는 물량 확보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연간 물량 배분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에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입찰 담합뿐 아니라 물량 담합 혐의도 적용했다.

이들 업체는 검찰 수사를 받은 뒤에도 담합을 계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8개사는 2016년 말까지 담합을 하다가 이듬해 2월 검찰의 입찰방해죄 수사가 시작되자 담합을 멈췄다. 그러나 이후 회사 수익이 악화되자 2019년 9월 입찰부터 담합을 재개했다. 당시 검찰은 다원알로이를 제외한 7개사 임직원들을 기소했는데,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고 한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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