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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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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이상한 선진국 대한민국이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려면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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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은 바로 대한민국이 직면한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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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서 춤이라도 춰야 하는 것 아닐까? 요즘처럼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은 영원히 우리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유토피아'처럼 여겨졌다. 선진국은 1876년 개항 이래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인이 모든 불합리한 일들을 인내하고 허리끈을 졸라매면서 다다라야 할 궁극의 목적지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선진국이 어느새 우리의 삶 속에 공기처럼 들어와 있었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한국을 고소득 국가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는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으로 변경하는 역사적 결정을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내렸다. 1964년 기구를 설립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역사의 주인공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 한국이었다.

정치적으로도 한국은 1987년 이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소수의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와 '완전한 민주주의'를 반복적으로 오가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미국과 프랑스가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된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어디 이것뿐인가. 한국의 대중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행동과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한국 대중문화는 구래의 악습과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의 무기가 된 지 오래다. 케이팝 팬들은 미국에서는 반 트럼프 운동을 주도했다고 알려졌으며, 태국, 홍콩, 칠레, 알제리 등에서는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중심에 서 있었고, 호주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주체였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BTS로 대표되는 한국의 대중문화는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심각한 불평등을 드러내면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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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당 GDP의 상대적 변화(%), 1946~2018(1946년 기준). 비교를 위해 다음 자료를 재구성한 것이다. Bolt, J. and van Zanden, J. 2020. “Maddison style estimated of the evolution of the world economy: A new 2020 update.” Our World in Data. ⓒ 소셜 코리아



그런데 이상하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경제, 정치, 문화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났는데도 나는 신이 나지도, 춤을 출 수도 없다. 세계인이 공감하며 찬탄했던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직면한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적 성공은 자신의 처참한 고통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소름 돋는 성장제일주의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통마저 상품화

2018년 기준으로 '선진국' 한국의 (상대) 빈곤율은 개발도상국인 터키, 멕시코, 칠레보다 높았다. 66세 이상의 노인 빈곤율은 43.4%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였다. 중위소득을 소득 하위 10%의 소득으로 나눈 불평등 지수(P50/P10)는 미국에 이어 4번째로 높았다.

한 사회의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자살률 또한 세계 1위이다. 지난 30년 동안(1987~2017) 대부분의 OECD 회원국에서 자살률이 감소한 것과는 반대로 한국의 자살률은 무려 153.6%나 증가했다.

합계출산율은 인구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던 0.8대(2020년)를 기록했고 더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인구 100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17.0명으로 영국의 1.62명의 10배에 이른다. 서울대 입학생 중 가구 소득이 상위 10%인 비율은 2017년 43.4%에서 불과 3년 만인 2020년 62.9%로 급증했다. 더 참담한 현실은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국민의 비율이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았다.

기적처럼 선진국이 되었지만, 그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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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개발도상국 중 유일하게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지만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다. ⓒ 게티 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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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공적 복지를 늘리려는 정부의 노력이 후퇴한 것도 아니다. 보수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 가릴 것 없이 민주화 이후 복지지출을 꾸준히 늘렸다. GDP 대비 사회지출은 지난 1990년 2.6%에서 2019년 12.2%로 30여 년 만에 4.7배나 증가했다. 복지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 적지 않다.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후보들은 기본소득, 상병수당, 사회서비스 확대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경제 성장률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건실한 성과를 거두었다. 삼성, 현대, LG, SK 등 재벌 대기업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심지어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연인원 1700만 명이 평화적 집회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21세기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순

그런데 우리가 직면한 이 말도 안 되는 모순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꿈꿔왔던 선진국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이상하다는 말밖에는 한국인이 직면한 이 모순적인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사람들은 부모 찬스를 사용하는 특권에 분노하고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피가 거꾸로 도는 울분을 느끼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을 지지하는 것을 주저한다. 불평등과 비정규직이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서울교통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하자 엄청난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했다.

결국 한국인이 분노한 것은 성장제일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불평등한 결과가 아니었다. 한국인이 분노한 것은, 이웃의 안정적인 삶이 내 기회를 가로챈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사회가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매일매일 사람들이 스스로 죽거나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도, 청년의 미래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으로 자영업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생계를 접어도, 한국 사회는 그것이 치열한 경쟁의 결과라면 눈도 깜짝하지 않을 사회가 된 것이다.

연대가 없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세금을 내고 국민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지난 30년 동안 복지 지출이 늘어난 것도 사회적 연대의 결과가 아니었다. GDP 대비 사회 지출이 급증했지만 그 대부분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는 사회보험 급여였다. 북서 유럽에서 사회보험은 사회적 연대를 상징하는 제도이지만 한국에서 사회보험은 안정적 고용을 보장받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을 가르는 특권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8월 현재 정규직의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가입률은 94.2%와 84.8%에 이르는 데 반해,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5.5%와 43.1%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사회보험은 내가 낸 것을 내가 돌려받는, 국가가 운영하는 또 하나의 보험 상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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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을 위해 영혼까지 팔아치운 우리의 노력은 연대 없는 사회를 만들고 성공의 덫에 갇혀버렸다. ⓒ 게티 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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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실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쩌면 헬조선이 된 선진국 대한민국의 모습은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성공'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장을 위해 영혼까지 팔아치운 우리의 노력이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기적 같은 성공을 위해 우리는 '나와 내 가족' 이외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연대 없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성공의 덫'에 갇혀 버렸다. 어떻게 해야 이런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공적 복지를 늘리면 되는 것일까? 새로운 혁신기업을 육성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닐 것 같다. 만약 성공이 우리가 직면한 헬조선의 원인이라면,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그 성공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길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조금 느리게 갈 수도 조금 빠르게 갈 수도 있을 뿐이다.

재벌 대기업이 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자동화 기계로 대체하고,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기보다는 손쉽게 국외에서 부품, 소재, 장비를 수입·조립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경제구조에서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생존경쟁은 지금보다도 더 치열해질 것이다.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연대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00년 전의 상상

많은 전문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오랫동안 대안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각각의 대안이 실현된다고 우리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저출산 현상을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했을 때 나를 포함해 많은 전문가들은 여성이 일과 돌봄을 양립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은 지난 2019년 현재 한국의 0~2세 아동 보육률(해당 연령 아동 중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아동의 비율)은 62.7%로 스웨덴의 46.3%보다 1.35배나 높다. 그러나 성 평등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출산율은 더 낮아졌다.

그렇다고 보육정책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출산이라는 삶의 문제는 일과 돌봄의 조화만의 문제도, 성 평등만의 문제도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총체적 삶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경제, 정치, 문화라는 한국인의 총체적 삶의 조건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의 성공이 만들어낸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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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대선이 우리의 삶의 조건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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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이 우리의 삶의 조건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불가능하다고 현실성이 없다고? 그렇다. 경제구조를 바꾸고, 정치구조를 바꾸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총체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조선인들이 일제의 강점에 신음하고 있을 때, 앞으로 100년 후 조선이 독립된 국가로 세계의 문화를 주도하는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아마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100년 전의 그 말도 안 되는 상상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작은 언덕을 오르는 번거로움일지도 모른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협력해야 성장할 수 있고 사람들이 서로 연대해야 더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제도와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현명한 한국인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정치가 예술인 이유는 바로 이 불가능한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이 기대와 좌절이 반복되는 또 다른 5년이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춤을 추고 싶다. 어깨가 들썩거리는 기쁨의 춤을 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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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편집·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관심영역은 복지국가를 정치, 경제, 복지의 통합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한국사회정책학회장(전), 시민사회에선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전)을 역임했고, 주요 저서로는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1~3, <이상한 성공>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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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홍식 / 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장(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윤홍식



윤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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