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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공무원 ‘꿀알바’요? 속도 모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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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사무원 ‘공무원 강제동원’ 논란

새벽 5시~저녁까지 쉼 없이 노동

수당은 최저임금에 훨씬 못미쳐

동원율 50% 넘는 지방직 불만 커


한겨레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 10월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공무원 선거사무종사자 위촉거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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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되면 반강제적인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방공무원에 편중된 모집 방식을 개선하든가,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수당이라도 주십시오.”

부산 동래구청에서 일하는 문병구(44) 주무관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생각하면 벌써 신경이 곤두선다. 2004년 임용된 뒤 선거 때마다 선거사무에 투입돼, 힘든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선거사무원은 선거 날 새벽 5시까지 해당 투표소에 도착해야 하니, 보통 새벽 4시께는 일어나야 한다. 투표소에 도착해서 인근 금고에 보관된 투표용지를 투표소로 옮기고, 투표용품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새벽 6시부터 투표가 시작되면 유권자들이 줄을 잇고, 각종 돌발 상황에도 신경 써야 해 긴장의 끈을 늦출 수도 없다. 인구가 많은 아파트 밀집 지역 투표소는 밀려드는 유권자 때문에 화장실 갈 시간조차 부족하다. 아침과 점심 식사도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교대로 편의점이나 인근 식당 등에서 재빨리 때워야 한다. 오후 6시 투표가 끝난 뒤에는 투표소 정리와 청소, 투표함 개표소 인계 등까지 마치면 저녁 7시가 훌쩍 넘는다.

문 주무관은 “모르는 사람들은 ‘꿀알바다. 수당 받아서 좋겠다’고 하는데, 선거사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맥이 탁 풀린다. 자칫 잘못하면 징계 등 불이익까지 받을 수 있어 온종일 초긴장 상태이기 때문이다. 동료 공무원 가운데 자발적으로 선거사무에 나서겠다는 직원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동래구청에선 선거 때마다 선거사무에 동원될 직원을 제비뽑기로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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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이 선거사무를 거부한다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전국 조합원을 대상으로 ‘선거사무원 위촉 부동의’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들의 반대 운동은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 공무원들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한겨레>에 제공한 자료를 보면,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선거사무원 26만5642명 가운데 지방공무원은 16만6943명으로 62.85%를 차지했다. 이어 교직원 1만5788명(5.94%), 농협 등 조합 직원 2426명(0.91%), 국가공무원은 1781명(0.67%), 공사·공단 직원 359명(0.14%) 순이었다. 지방공무원 비중은 2017년 대선 63.22%(16만5371명), 2018년 지방선거 53.25%(20만1346명), 2020년 총선 52.30%(17만1255명)로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공무원 가운데 국가공무원이 10만7062명(교육·공공안전·우정 분야 제외)이고, 지방공무원은 29만9273명(지방교육행정 제외)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방공무원이 선거사무원에 뽑히는 비율이 국가공무원에 견줘 높다.

관련 규정에는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 학교·은행·공기업 직원, 공정하고 중립적인 시민 등을 선거사무원으로 위촉하게 돼 있지만, 선관위의 행정편의적인 발상 때문에 지방공무원 비중이 높다는 게 노조 쪽 주장이다.

현재 선거사무원 위촉은 선관위가 각 시·군·구에 필요한 인원을 정해 협조를 요청하면, 시·군·구는 요청받은 인원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말로는 협조라지만, 사실상 강제성을 띤다. 헌법(제115조)에서 ‘선관위는 선거사무 등에 관해 관계 행정기관에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고, 지시받은 행정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공직선거법(제5조)에도 ‘공공기관은 선거사무에 관해 선관위의 협조 요구를 받으면 우선하여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공주석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선거가 (선거사무에서는) 민주적이지 않다. 1948년 첫 선거 이후 70여년 동안 강제동원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원인 줄 몰랐고, 당연한 의무인 줄 알았다. 많은 공무원이 선거 날만 되면 너무 많은 일과 책임 때문에 힘들어한다. 이제 우리도 동의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 그게 합법이고 공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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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 3월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최저임금법 위반 고발’ 기자회견을 한 뒤,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에 고발장을 접수하는 모습.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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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당


더 큰 불만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당이다. 선거사무원은 휴일인 투표일 대략 오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 14시간 일한다. 내년 최저임금 9160원을 기준으로 계산해도 12만8240원을 지급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에 못 미친다.

2018년 지방선거 때는 수당 4만원에 사례금 4만원을 더해 8만원을 받았고, 2020년 총선 때는 수당이 1만원 올라 9만원을 받았다. 수당 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한 대체휴무나 특별휴가 같은 혜택도 없다. 휴일이나 연장근로수당은커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당을 받으며 ‘열정페이’를 강요받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무원들은 지난해 6월 선관위를 상대로 ‘선거사무 일당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원지법 행정3부(재판장 김정중)는 지난 5월 “선거사무종사자 위촉은 행정청으로서 공권력을 행사하여 행하는 행정처분이 아니라 공법상 근무관계의 설정을 목적으로 한 선관위와 선거사무종사자 사이에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의사가 합치돼 성립하는 일종의 공법상 근로계약에 해당한다”며 “공법상 계약은 원고(공무원)가 선거관리 업무를 수행할 때 피고(선관위)가 실비변상적 성격의 금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으로 돼 있기 때문에, 근로 제공의 대가 관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법이 준용될 법률상 근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노조는 비록 소송에서 졌지만 재판부가 ‘선관위와 선거사무종사자 사이에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의사가 합치돼’야 한다고 밝힌 만큼, 공무원들에게 선거사무원 동원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조헌식 전공노 서울본부장은 “공직 생활 25년 동안 매번 선거마다 선거사무에 종사했다. 이 업무의 부당성을 계속 제기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선거사무 거부 투쟁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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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실시된 21대 총선 사전투표 모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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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중앙선관위는 “(지방공무원들은) 선거사무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선거가 각 시·군·구 단위로 실시되는 만큼, 지방공무원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편중되지 않도록 다양한 인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직은 주로 서울과 세종에 있다 보니 (비중을 늘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수당 인상과 관련해서는 “내년 대선에 수당 1만원을 추가 인상하기 위해 2022년 예산안에 반영하는 등 재정당국과 지속해서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당 1만원을 인상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32억원 수준이고, 현재 9만원인 수당(사례금 포함)을 최저임금 수준인 12만8240원까지 올리려면 산술적으로 122억원가량이 더 필요하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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