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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좋은 일자리 단톡방 대화 [손현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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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화 상대=최노동, 이거시, 박금융, 정복지, 김미시

2030 청년 표에 목을 맨 차기 대선후보들치곤 이해가 안 된다. 청년들이 가장 원하는 건 좋은 일자리인데 이에 대해선 언어가 빈약하니 말이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대선후보들도 드물거니와 내놓은들 내용이 벙벙하기 짝이 없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머리를 스친 의문점 하나. 나는 5명의 경제학 박사들과 묶여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고민이 하나 있는데… '좋은 일자리'는 어떻게 정의(定義)할 수 있을까"라고.

10분 후 노동경제학의 대가인 최노동이 제법 긴 글을 올리기 전까지 이 주제로 진지한 토론이 이뤄질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일단 모든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다. 직업엔 귀천이 없지 않나. 그러나 굳이 정의하자면 고부가가치 일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로자가 충분한 인적자본을 축적함으로써 높은 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는 일자리."

뭔가 핀트가 어긋난 답변 같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즉각 반응했다. "그건 국가 차원에서의 정의이고 근로자 본인 입장에서 보면 아니지 않냐. 청소를 하든 첨단 산업에서 일하든 월급 많이 받아 풍족하게 소비하면 그게 좋은 일자리 아니겠는가"라고.

까칠한 이거시가 끼어들었다. "그리 말하면 돈은 많이 받고 일은 하지 않아도 고용이 보장되는 게 좋은 일자리라는 느낌이 오는데"라며. 나는 그제야 설명이 정교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경제학의 기본 중의 기본인 '한계(marginal)'의 개념이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부연설명을 했다. "월급 많이 받는다는 걸 월급이 빠르게 증가하는 걸로 정정한다"고, 그러려면 고용주가 지불능력이 있어야 하고 해당 조직이 성장을 지속해야 하니까.

최노동이 초스피드로 들어온다. 뭐 그 소리가 그 소리라는 거였다. "본인의 소득뿐 아니라 조직의 이익도 증가해야지"라면서.

이거시가 다시 들어온다. "누구한테 좋은 일자리인지 먼저 규정해야 한다"면서. "경제학자가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와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좋은 일자리 개념이 너무 다르지 않냐"며 정곡을 찌른다. "그래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공공기관 채용 늘리면 된다는 발상이 나오는 거 아니겠냐"며 쏘아붙인다.

최노동이 자신의 기존 발언을 방어할 겸 정리에 들어간다. "내가 어디 가서 일자리 관련된 강의를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좋은 일자리는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일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며 "그건 민간기업의 몫"이라고.

은인자중하던 박금융이 한마디 거든다. 주제에선 좀 빗나간 발언이지만. "정치권으로 비화되면 좋은 정책은 돈 나눠주는 정책이고 좋은 대통령은 돈 나눠주는 대통령이지." 너무 비꼬아서 말한 걸 뒤늦게 눈치챘는지 귀여운 이모티콘 하나 얹는다.

눈팅만 하던 정복지가 들어온다. 다들 경제학자같이 말한다면서. 영어 단어 4단어를 심플하게 던진다. 'Wage(임금), Security(안정성), Autonomy(자율성), Fun(재미).' 쉽게 생각하지 뭐 그리 요란들 떠느냐는 투였다.

끝물 분위기를 감지한 김미시. 조용필이라도 되는 듯 마지막에 등장해 결론을 내려고 한다. "좋은 일자리란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지불되는 일자리. 근로자는 손해 안 보고 기업가는 투자와 혁신에 대한 대가를 받는. 그 결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는 계속 늘어나고 근로자는 월급 더 많이 받아가 선순환이 일어나는. 그러기 위해선 근로자는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은 이윤을 많이 내고, 정부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고." 그러면서 마무리 멘트를 날린다.

"어려워 잘 모르겠네. 이러지 말고 해 가기 전에 밥이나 먹지. 다들 백신 접종자라 6명까지는 상관없잖아."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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