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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故 김용균 떠난 지 3년…"노동자 죽음 내모는 구조는 그대로"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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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위, 충남 태안서 현장 추모제 개최

김씨 사망 후 노동자 안전 대책 논의됐지만

산안법 등은 한계 많고 원·하청은 책임회피

세계일보

7일 오후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 3주기 추모제에 고인의 동료들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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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태안화력발전소 앞. 지난 2018년 12월10일 이 곳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아들의 추모 조형물을 꼭 끌어안았다. 언제라도 돌아올 것 같은 아들은 말이 없었고 김 이사장은 슬픔에 눈을 감았다.

김씨를 기억하려는 이들이 모인 현장 추모제였지만 단지 ‘추모’에만 그치지 않았다. 김 이사장과 함께 노동자,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등은 ‘내가 김용균이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라는 구호를 외쳤다.

김씨 사건 이후 약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 모는 현실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위원회’(추모위)는 “정부와 여당은 2022년까지 산재사망률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질병과 죽음을 가져오는 환경과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수치는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용균의 동료들은 아직도 하청(노동자)”이라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5인 미만 사업장과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제2의 김용균을 막자’는 호소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메아리로만 맴돌고 있다. 김씨 사망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1심 재판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고, ‘산재사망 노동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문재인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씨 사망 이후 산안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비판 속에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은 김씨가 사망한 구조적 원인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지 않다면서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한 법과 제도적 개선을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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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사망 3년이 흘렀지만…올해 산재사망 오히려 증가

3년여 전 김용균씨 사망 소식은 산재 사고에 무심했던 우리 사회가 노동 현실을 재점검하는 기폭제가 됐다. 한국서부발전의 하도급 업체 한국발전기술에서 일했던 계약직 신분의 김씨는 2018년 12월10일 홀로 석탄 운송 컨베이어 벨트 밑에 밀폐함 점검구에서 설비 상태를 점검하다 벨트에 끼여 숨졌다. 2인1조라는 최소한의 안전 수칙은 무시됐고, 김씨는 작업용 랜턴도 없이 휴대폰으로 설비를 확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 사고 이후 2019년 4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졌다. 특조위는 4개월여 간의 조사 끝에 석탄화력발전소의 원·하청 구조에 따른 이른바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 돼 김용균씨가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민영화를 위해 작업 공정을 무리하게 쪼갠 후 여러 협력사에 외주를 준 결과, 위급상황을 막기 위한 현장의 소통이 단절되면서 김씨가 위험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대법관을 지낸 김지형 특조위 위원장은 종합보고서를 통해 “우리가 왜 이 지경까지 왔습니까”라면서 “인권의 눈으로 우리 모두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에도 산업재해를 둘러싼 노동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안에 산재 사고 사망자를 500명대로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최근 산재 사망 사고는 오히려 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지난 9월말 현재 산재 사고 사망자수는 678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명(2.7%) 늘었다. 또 질병에 따른 사망자수도 957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0% 증가했다.

◆‘개정 산안법’, ‘중대재해처벌법’ 한계 뚜렷

김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제도도 허점이 많다. 김씨 사망 이후 2018년 12월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안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도급 금지 범위를 협소하게 정한 탓에 현실적으로 원청의 책임을 묻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김용균씨 업무였던 전기사업 설비의 운전 등은 도급 금지 범위에 포함되지도 않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 이사장도 이 법을 두고 “우리 아들을 살릴 수 없는 데 왜 ‘김용균법’이라고 부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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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10월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배신정권 규탄 1차 촛불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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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중대한 인명피해를 일으킨 산재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2인1조 작업 의무화’ 등이 필수적인 안전조치 사항이 시행령에 반영되지 않았다. 아울러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까지 적용이 유예됐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8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원청은 책임 회피, 하청은 안전을 비용으로 생각”

원청과 하청 모두 안전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현실 또한 그대로다. 발전비정규노조대표자회의의 한국발전기술지부 신대원 지부장은 “3년 전 사고가 난 태안에서 고용노동부가 하청회사 상대로 근로지도감독을 했고 안전보건관리감독자 필요를 권고했지만 (하청업체들은) 무시한다. 한국발전기술의 한 사업소는 안전관리비를 쓰고 남은 건 회사 이윤으로 돌렸다”면서 “원청은 책임지기 싫어하고 하청회사는 안전을 비용이고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용균씨가 일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의 노동자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은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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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비정규직노동자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위원회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고(故) 김용균 3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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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김씨 사건의 1심 재판은 원·하청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검찰은 김씨 사망 이후 20개월 만에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 등 임직원 9명과 하청업체 대표이사 등 5명을 재판에 넘겼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운동본부 손익찬 볍률팀장은 “이 사건은 검찰이 ‘원청’의 책임을 묻고 기소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고의 원인이 된 장소와 그 안의 설비 모두 원청이 소유하고 관리, 감독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달 21일 마지막 공판기일이 예정된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적극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피고인 측은) 현장의 컨베이어벨트가 공항의 컨베이어벨트처럼 안전한데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면서 막말을 하고 있다. 유족에게 뒤집어 씌우는 이해 안 되는 사태를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분노스럽다”면서 “용균이 같은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일해야 하고, 권리를 포기해야 일자리를 얻는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제가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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