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사설] ‘여성혐오 발언’ 확대재생산하는 언론, 부끄럽지 않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터무니없는 여성혐오성 주장들이 어떻게 ‘담론’의 지위를 얻어가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는지가 <한겨레> 보도로 다시 한번 드러났다. <한겨레>는 7일 ‘지에스(GS)25 집게손 사과’와 도쿄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에 대한 온라인 공격 등, 올해 발생한 10건의 백래시(성평등에 대한 반발성 공격) 사건이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40여개의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 카페 등에 올라온 게시물과 언론 매체가 생산한 기사를 비교분석한 결과다.

10건의 백래시 사건이 만들어지고 증폭되고 여론화되는 과정은 하나의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비슷했다. 여성을 비하하거나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글이 올라오면 남성 커뮤니티에서 무분별하게 퍼지고, 언론과 정치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공격’의 대상이 된 기업이나 기관은 이에 굴복해 사과했고, 이는 백래시 세력에게 ‘효능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한 이들이 다음번 공격 대상을 찾아 나서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온라인 공간의 음습한 주장을 공론장으로 끌어내 날개를 달아주는 데에는 언론이 큰 구실을 했다. <한겨레>의 분석 결과를 보면, 언론이 커뮤니티 주장을 기사화하면 해당 사안과 관련된 온라인 게시물이 늘어나는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언론이 백래시 세력의 목소리를 키우는 ‘스피커’ 구실을 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공간의 비상식적인 주장을 전하면서도 언론이 비판적 점검이나 사실 확인 노력도 없이 ‘퍼 나르는’ 수준의 보도를 한다는 점이다. 언론의 역할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명백한 혐오와 폭력을 ‘논란’ 또는 ‘갈등’으로 바꿔치기하는 보도 태도도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다. 지난여름 안산 선수에 대한 공격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쏟아진 기사들에서는 “숏컷 페미 논란”과 같은 제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폭력’, ‘혐오’라고 규정한 외국 언론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올해 들어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백래시가 확산되고 있다. 학교에서도 교사들이 학생들한테 ‘페미냐?’는 공격적인 질문을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백래시 세력의 주장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할 정치인들이 수용적인 태도를 보인 탓도 크다. 언론과 정치권이 혐오 발언에 마이크를 내주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