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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미술의 세계

'물의 화가' 안영일, 하퍼스 갤러리와 함께 내년 한국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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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1966년 미국 LA 정착

한평생 물빛을 탐구...2020년 12월 별세

1980년대부터 '물' 시리즈 연작으로 주목

내년 미국 전시에 이어 한국 전시로 관객 만나

이데일리

CALIFORNIA J 1, 1998, Oil on canvas, 48×52 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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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한국의 대표작가 안영일이 내년 하퍼스 갤러리(Harper’s Gallery)와 함께 고국을 찾는다.

하퍼스 갤러리는 내년 3월 미국 뉴욕에서 전시에 이어 서울에서 열리는 프리즈(Frieze)와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함께하는 아트페어 전시까지 미국과 한국을 잇는 안영일 프로젝트 전시를 기획 중이다. 하퍼스 갤러리는 미국 LA, 뉴욕에 터 잡고 있는 글로벌 갤러리다. 이번 전시회에서 ‘물의 화가’로 불리는 안영일 작가의 대표 시리즈인 ‘물’ 시리즈가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하퍼스 갤러리는 한국과 미국에서 약 30회의 개인전을 가진 안영일 작가를 한국의 대표작가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 중이다. 2015년 이후 미국에서 그의 작품 세계가 재조명되면서 역으로 한국에서 또 다른 전성기를 구가하는 안영일 작가를 새삼 조명하겠다는 의도다. 앞서 10월 열린 KIAF에서 갤러리 세솜을 통해 선보인 ‘물’ 시리즈 전시가 아트뉴스 선정 ‘10대 베스트 부스’로 꼽힐 만큼 주목받기도 했다. 아트뉴스는 “인내심이 강한 화가로, 한 색이 다른 색의 언더페인팅을 천천히 가리는 세심한 표시로 빛나는 추상 캔버스 마크를 쌓은, 인내심이 강한 화가(a painter of patient virtuosity, building his luminous abstract canvases mark by careful mark, one color slowly typically covering an underpainting of another color)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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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자와 유사쿠가 구입 소장하고 있는 ‘WATER YLWG’(17 / 66×82 inches) 작품 앞에 앉아 있는 안영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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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일 작가는 1934년 개성에서 서양화가 안승각의 아들로 태어나 2020년 12월 미국 LA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다. 이 무렵부터 타고난 재능과 감성으로 천재 소년화가라 불리기도 했다. 10세 때 귀국해 청주사범 부속 초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195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 제2회 국전에 참여해 특선을 받았으나 참가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게 드러나 입선으로 내려진 일화도 유명하다. 대학 졸업 후 이화여고와 서울 사대부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도 했다.

안영일 작가는 1966년 미국으로 이주 후 캘리포니아의 자연풍광에 빠져 이곳에 머물면서 더 깊고 다양한 작품 세계를 이어갔다. 1967년 재커리 월러(Zachary Waller)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도약했으나 1970년대 들어서 자신의 작품을 두고 갤러리와 컬렉터 간에 소송이 벌어지면서 10년 남짓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이혼, 우울증 등으로 경제적 파산까지 겪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안영일 작가는 작은 낚싯배에 몸을 싣고 거의 매일 바다에서 낚시를 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안영일은 “햇빛이 부서지고 물에 반사되면서 순간마다 오색영롱하게 반짝인 색들이 겹겹이 퍼져”나가는 바다를 보고 “그저 푸른색인 것 같은 하늘과 바다 안에 너무 많은 색들이 있었다”는 걸 느꼈다. “출렁이는 파도와 절멸하며 계속 변화하는 색들이 훗날 ‘물’ 시리즈가 되어 화폭에 담기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오늘도 그림이 나에게 오다’·136쪽·안영일 저)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 화가의 황금기다. 그런 시절 바다 고깃배 위에서 보내던 안영일은 1980년대 들어서 다시 작품 활동을 점차 시작했다. 안영일은 1983년부터 시작한 ‘물(Water)’ 시리즈로 재기에 성공했다. 캘리포니아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색채와 형체로, 그리고 살아있는 자연의 소리의 파동”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오늘도 그림이 나에게 오다’·151쪽) 이 감정은 ‘캘리포니아’로 이름 붙인 연작으로 태어났다. 이후 1996년 LA 존앤조 갤러리에서 ‘캘리포니아’ 시리즈로만 전시회를 열었다.

이 무렵부터 안영일은 10년 넘는 기간 벗어나 있던 세상에 다시 들어섰다. 2001년 재혼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02년에는 미국 국무부 ‘미술대사’로 발탁돼 ‘선셋’ ‘스페이스’ 등 2개 작품을 미국 해외 공관에서 대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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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일 작가의 대표 시리즈인 ‘물(WATER)’ 시리즈의 갤러리 세솜 전시 전경 .(사진=세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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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일은 2013년 뜻하지 않은 뇌졸증으로 투병하는 와중에도 붓을 들었다. 2015년 1월 LA한국문화원에서 회고전 ‘안영일: 물과 빛의 변주곡’을 시작으로 같은 해 2월 롱비치 미술관(Long Beach Museum of Art)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몇몇 아트페어와 옥션에도 작품을 출품했고, 팜스프링스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부산 화랑미술제, KIAF 2015에서 모두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2016년과 2017년 LA 아트쇼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한국 단색화 특별기획전에 초대됐다. 2018년 시카고의 카비 굽타(Kavi Gupta)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가 생전 마지막 개인전이 됐다. 안영일은 자신의 저서에서 “가장 기쁜 일은 2016년 미국 서부지역 최대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라크마 미술관)이 대작 ‘물(Water SZLB15, 2015)’을 뮤지엄 컬렉션으로 소장한 것, 그리고 2017년 3월부터 7개월간 라크마 한국미술 갤러리에서 나의 작품전시회가 열린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2017년 3월에는 한국을 떠나온 지 50년,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지 30년 만에 현대화랑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안영일은 한국에서 태동한 한국작가 고유의 것으로 알려진 단색화, 그것도 미국 LA에서 자생한 단색화 화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평론가 윤진섭은 2015년 미국 LA 스튜디오를 찾아 안영일의 작품을 살펴본 후 미주 한인언론과 인터뷰에서 “수십년 동안 한국 작가들과 교감이 없었는데도 같은 계열의 작품을 해왔다는 사실이 경이롭다”면서 안영일의 ‘물’시리즈는 분명한 단색화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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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일 작가의 ‘물’ 시리즈의 한 작품을 확대한 모습. “힘의 강약과 나이프로 물감을 밀 때의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표정을 짓는다.”(평론가 윤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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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일 작가의 ‘물’ 시리즈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으로 덮인 그림 같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엄지손톱만한 사각형의 점이 모자이크처럼 이어져 또 다른 감동을 뿜어낸다. 물감을 일정한 크기로 캔버스에 페인팅 나이프로 올리는 기법이 평면화에 입체적 생동감을 준다. 물감이 흐르다 멈춘 듯 끝 부분이 곧추선 질감은 바늘처럼 날카롭게, 혹은 미세한 파도처럼 여러 겹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평론가 윤진섭은 이를 ‘촉각성 성질’로 규정하면서 “알맞은 정도로 갠 유성물감을 나이프로 찍어 캔버스에 바를 때 주어진 힘에 밀려서 사각형의 가장자리에 머무는 진득한 물감의 덩어리들이 독특한 마티에르를 형성한다”(평론 ‘색과 빛으로 가득 찬 조화의 세계’)고 적었다.

안영일은 “내가 다른 단색화 작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물’ 외에 다른 시리즈의 작업도 계속해왔다는 것이다”고도 말했다.(‘오늘도 그림이 나에게 오다’·51쪽). 그의 대표 연작 시리즈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우산(Um-brella)’·‘앳 더 비치(At The Beach)’·‘새(Birds)’·‘뮤지션(Musician)’ 등도 있다. 평론가인 정숙희(전 미주한국일보 부국장)는 “평생 사각의 캔버스가 그의 세상이었다. 그가 그림이요, 그림이 곧 그이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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